老馬之智
東周列國志 第21回 髥翁의 詩
蟻能知水馬知途、 개미는 물있는 곳을 알고, 말은 길을 알아서,
異類能將危困扶。 짐승이 오히려 위난을 도울 수 있었구나.
堪笑淺夫多自用、 어리석은 자는 잔꾀를 많이 부려 웃음거리가 되지만,
誰能舍己聽忠謨? 누가 고집을 버리고 충언을 들을 수 있을까.
[解說]
이 시는 열국지를 읽으면서 기왕에 읽는 김에 번역도 함께 해보자는 마음으로 번역하다가 인상 깊었던 시라 따로 분류해 올린다. 이 시가 나오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춘추시대의 첫번째 패자인 제 환공은 천신만고 끝에 제나라의 제후가 되었는데, 자신이 제후가 되기까지 자신을 헌신적으로 도왔던 포숙아를 재상으로 삼으려 하였다.
그러나 일찌기 관중과 친하게 지내며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고사의 주인공이 될 정도로 친분이 두터웠던 두사람은 비록 모시던 주공이 달라 운명이 갈려 관중은 죽어야 할 처지였지만 누구보다도 관중의 사람됨을 잘 알고 있던 포숙아는 제 환공에게 춘추시대에 패자가 되려고 한다면 반드시 관중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고 역설하며 관중의 사면과 함께 관중의 중용(重用)을 적극 권하였다.
결국 환공은 관중을 용서하고 관중과 며칠동안 치열한 담론(談論)끝에 관중을 예로써 맞아 재상으로 기용하며 중부(仲父)라는 호칭을 내렸다. 관중을 재상으로 맞으면서 나라의 틀을 갖추게 된 환공은 패자의 길을 도모해 나가는데 그 과정에서 연(燕)나라의 긴급 구조요청을 받게 되었다.
연나라는 산융(山戎)의 침략을 받아 국토가 유린당하고 있었다. 관중과 상의하여 연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출병하였는데 제환공이 연나라를 구원하러 나섰다는 사실을 알자 산융은 철수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기왕에 출병하였으니 중원의 화근을 근본적으로 제거해야 한다는 관중의 말에 제환공은 산융의 본거지를 치게 되었다.
산융은 지세의 험준함을 믿고 지형을 이용하여 골짜기에 들어간 제나라 군대의 앞길을 막은 후 물길을 끊어버렸다. 물부족으로 고심하던 제나라 진영에서 습붕이 계책을 냈다. 개미둑을 찾아 그곳을 파면 우물이 있으니 매미둑을 찾아보라 하였다. 과연 개미둑을 찾아 그 밑을 파가지고 물을 얻었다.
결국 제나라군은 산융의 본거지를 공략하였는데 산융의 군주는 고죽국으로 도주하였다. 제환공과 관중은 내친 걸음이라 고죽국을 치는데 고죽국의 유인책에 걸려 미곡(迷谷)이라는 곳에 들어가 출구를 찾지 못하고 미로를 헤메게 되었다. 그때 관중이 계책을 내어 늙은 말을 골라 앞장세우고 그 뒤를 따라간다면 출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하여 결국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 소설 속에서 염옹(髯翁)이 그 상황을 읊었다고 한 시가 위의 시이다.
염옹은 명(明) 나라 서림(徐霖)을 이른다. 순수(巡狩)하던 무종(武宗)을 호종하여 서울까지 왔었으나 벼슬을 주자 굳이 사양하고 돌아갔다. 그는 자호를 염옹이라 할만큼 수염이 아름다웠다고 함. <明史 卷286>
☞ 老馬之智는 老馬知道라고도 하는데 한비자에서는 노마식도(老馬識道)라는 고사로 나온다.
관중(管仲)과 습붕(隰朋)이 환공을 따라 고죽을 정벌했는데, 봄에 떠나 겨울에 돌아오면서 길을 잃고 말았다. 관중이 “늙은 말의 지혜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오.”라고 말하고는 늙은 말을 풀어 놓고 그 뒤를 따라가 길을 찾게 되었다. 산중에서 행군을 하다가 물이 떨어졌다. 습붕이 말했다. “개미는 겨울에 산의 남쪽에 살고, 여름에는 산의 북쪽에 산다. 개미가 쌓아 놓은 흙이 한 치면 한 길 깊이에 물이 있다.” 과연 땅을 파서 물을 얻었다. 관중의 성명(聖明)과 습붕의 지혜를 가지고도 알지 못하는 것을 만나면 늙은 말과 개미에게서 배웠거늘, 오늘날의 사람들은 어리석으면서도 성인의 지혜를 배우려고 하지 않으니 어찌 지나치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管仲隰朋從於桓公而伐孤竹, 春往冬反, 迷惑失道. 管仲曰, 老馬之智可用也. 乃放老馬而隨之, 遂得道. 行山中無水, 隰朋曰, 蟻冬居山之陽, 夏居山之陰,蟻壤一寸而仞有水. 乃掘之, 遂得水. 以管仲之聖而隰朋之智, 至其所不知, 不難師與老馬老蟻, 今人不止以其愚心而師聖人之智, 不亦過乎. <韓非子. 說林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