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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古文學/散文, 小說

桂陽草亭記 - 李奎報

by 柳川 2022. 7. 27.

                                                                         桂陽草亭記 

 

 

                                                                                                                   李奎報

 

桂陽僻在蓬艾之間。無一林泉勝境可以遊踐者。唯南山之側, 有一亭焉, 父老相傳云。「故相國許公洪才嘗典是州, 初相其地, 築石而臺之。故太守李諱實忠, 疏水作沼, 跨亭於其上也, 一間十椽, 覆之以茅, 示儉也。縱廣不過八尺, 坐不過八人, 殺其度也。」  水出巖罅, 極寒冽如氷。雖盛夏入浴, 毛髮立豎, 不可奈久。加以盤松茂樹, 布陰産涼, 淸風自來。畏景不逼, 最愜於避暑。故有額曰滌暑。然州人猶以草亭呼之。或曰, 「此地有奇形勝勢。尤利於爲州者。」 斯類巫瞽不經之說, 儒者所宜愼導。然俚言野語, 有時而中, 亦不可不信也。先僕之未到, 忽爲燒琴煮鶴者所毁, 荒涼舊地而已。予見而傷之, 召州吏謂曰, 「亭是李太守所創, 庸害汝州, 而乃敢毁耶? 古人有思其人, 不翦甘棠者, 敢毁亭耶?」 吏默然而退, 尋拾舊材, 咄嗟更搆, 明日以畢事來告。予與僚友置酒落之。噫。予以去歲孟炎, 自補闕出守是州。至今年六月, 除拜禮部郞中起居注知制誥, 將詣天闕。僚友諸君曰, 「此亭太守所重開也。不留誌, 無以使後者知之。」 予然之。因書大槩。囑後來者之無輕廢毁。且爲李太守存不朽之迹耳。時庚辰七月日, 老守禮部員外郞李某記。

                                                                                          [한국고전종합DB <東國李相國集 第24卷>]

 

罅 : 틈 하. 틈. 결함. 실수. 탈락, 누락. 갈라지다.       畏 : 꺼리다. 싫어하다.      愜 : 쾌할 협. 유쾌하다. 만족하다. 맞다. 마땅하다.

俚言野語 : 항간의 속된 말.       

燒琴煮鶴 : 보잘것없이 메마르고 스산한 풍경인 살풍경의 백미격인 표현.

 

당나라 시인 이상은은 ‘의산잡찬(義山雜簒)’에서 살풍경(殺風景)의 예로 다음 몇 가지를 들었음.
화하쇄곤(花下曬褌, 꽃 아래에서 잠방이를 말림), 대화철다(對花啜茶, 꽃을 마주해서 차를 후루룩 마심), 태상포석(苔上鋪席, 이끼 위에 돗자리를 폄), 송간갈도(松間喝道, 소나무 숲 사이에서 길 비키라 벽제함. 화간갈도花間喝道), 석순계마(石筍繫馬, 석순에 말을 매어둠), 월하파화(月下把火, 달 아래서 불을 지핌), 기연설속사(妓筵說俗事, 기생 곁들인 잔치에서 속세의 일을 말함), 과원종채(果園種菜, 과수원에 채소를 심음), 배산기루(背山起樓, 산을 등지고 누각을 세움), 화가하양계압(花架下養鷄鴨, 꽃시렁 아래에서 닭과 오리를 침), 선승비응(禪僧飛鷹, 참선하는 중이 매를 날림)’ 등.

명(明) 나라 황윤교(黃允交)가 살풍경으로 든 것에는 ‘고취유산(鼓吹遊山, 북 치고 나팔 불며 산놀이를 함), 청가설가무(聽歌說家務, 노래를 들으며 집안 일을 말함), 송림작측(松林作厠, 솔밭에 측간-변소-을 만듦), 명산벽상제시(名山壁上題詩, 이름난 산의 바위 절벽에 시를 지어 새김)’ 등이 있음. [네이버지식백과<한시어사전>] 

 

庸 : 何.                        咄嗟 : 눈깜짝할 사이. 혀를 차면서 애석하게 여김. 잘못을 엄하게 지적하며 꾸중함.

 

古人有思其人, 不翦甘棠者。  詩經  國風/召南/甘棠 의 詩句.

 

甘棠

蔽芾甘棠,勿翦勿伐,                       우거진 팟배나무 자르지도 베지도 마오!

召伯所茇。                                      소백님이 묵으신 풀밭이라오.

蔽芾甘棠, 勿翦勿敗,                       우거진 팟배나무    자르지도 꺾지도 마오.

召伯所憩。                                      소백님이 쉬신 곳이라오.

蔽芾甘棠,  勿翦勿拜,                      우거진 팟배나무   자르지도 꺾지도 마오.

召伯所說。                                      소백님이 머무신 곳이라오,     

 

 

 

계양(桂陽)이란 곳은 다북쑥 우거진 사이의 후미진 곳에 있다. 가서 놀 만한 경치 좋은 숲이나 샘물은 하나도 없다. 오직 남산(南山) 옆에 정자 한 채가 있는데, 노인들이 전하여 말했다.

“옛날 상국이었던 허홍재(許洪才)가 일찍이 이 고을을 다스릴 때 그 땅에 터를 잡고 돌을 쌓아서 대(臺)를 만들었다. 또 옛 태수 이실충(李實忠)이 물을 끌어 못을 만들고 그 위에 걸쳐서 정자를 지을 적에 한 칸에 서까래 10개를 걸치고 띠풀로 덮어 검소하게 보였다. 길이와 너비가 8자를 넘지 않았고 앉을 자리도 8명을 넘지 못하게 한 것은 그 크기를 줄인 것이다.”

물이 바위 틈에서 나오는데 얼음처럼 매우 차거웠다.  한여름일지라도 들어가 목욕하면 추워서 모발이 곤두설 정도라 오래 견뎌내지 못했다. 게다가 반송(盤松)과 무성한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주니 시원해진데다가 맑은 바람이 불어오고 따가운 햇볕이 가까이 오지 못해 피서하기에 가장 좋았다. 그런 까닭에 ‘척서(滌暑 더위를 씻는다는 뜻)’라는 편액(扁額)이 걸려 있다. 그러나 고을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초정(草亭)이라고 부른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이곳은 기이한 지형과 뛰어난 지세가 있어서 고을의 수령이 된 자에게는 더욱 이롭다.”

이 따위 무당이나 박수의 허망한 말은 선비된 자가 마땅히 말하는 것도 삼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항간의 속된 말도 때로는 맞는 것이 있으니, 또한 믿지 않을 수도 없다. 내가 오기 전에 이 정자는 뜻밖에 엉뚱한 생각을 가진 자에게 헐리게 되어 황폐하고 쓸쓸한 옛터만 남았을 뿐이었다.

내가 그것을 보고 마음이 상해 고을의 아전을 불러 물었다.

“이 정자는 이 태수(李太守)가 창건한 것인데, 너희 고을에 무슨 해가 된다고 감히 헐어버렸단 말인가?  옛 사람은 나무와 인연있는 사람을 생각하여 팥배나무(甘棠)를 베지 말라고 했는데, 너희가 감히 정자를 헐었단 말이냐?”

아전은 묵묵히 물러가더니 옛 재목을 거두어 순식간에 다시 세우고 이튿날 와서 일을 마쳤다고 보고했다. 내가 동료들과 더불어 주연(酒宴)을 베풀고 낙성식을 하였다.

아, 작년 초여름에 내가 보궐(補闕 사간(司諫))에서 외직으로 나와서 이 고을의 원이 되었었다. 금년 6월에 이르러 내가 예부낭중 기거주 지제고(禮部郞中起居注知制誥)를 제수(除受)받아 장차 궁궐에 나아가게 되었다.

동료들이 말했다.

“이 정자는 태수가 중건한 것인데,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뒷사람들로 하여금 알게 할 수 없다.”

나도 그렇게 여기고 따라서 대략을 적으니, 뒤에 오는 자에게 가볍게 허는 일이 없기를 부탁하고, 또 이 태수를 위하여 불후(不朽)의 자취를 보존하게 하려는 것이다.

경진년(1220, 고종 7) 7월 일에 늙은 태수 예부 원외랑 이모(李某)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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