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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漢詩/白居易

賦得高原草送別

by 柳川 2019. 3. 5.

                                 賦得高原草送別

 

 

                                                                              白  居   易

 

離離原上草,                            우거진 언덕 위의 풀은

壹歲壹枯榮。                         해마다 성함과 쇠함을 반복하는데

野火燒不盡,                            들불도 다 태우지는 못하고

春風吹又生。                         봄바람 불면 다시 돋누나

 

遠芳侵古道,                            아득한 향기 옛 길에 일렁이고

晴翠接荒城。                         옛 성터엔 푸른빛 감도는데

又送王孫去,                            또 그대를 보내니

萋萋滿別情。                         석별의 정만 무성하구나.

 

 

 

 

이 시는 정원(貞元) 3(787) 혹은 5白居易의 나이 16세 혹은 18세 때의 작품으로 추정한다저작시기를 두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舊唐書≫ 〈白居易傳에는, 15, 6세에 저작랑(著作郞고황(顧況)에게 글을 보여주었다고만 했는데당나라 사람 장고(張固)의 幽閑鼓吹(유한고취)에 상세한 내용이 보인다.

 

백거이(白居易)가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처음 장안에 왔을 때 고황(顧況)을 뵙고 자신의 시를 보여주었더니고황(顧況)이 백거이(白居易)의 성명을 보고 한참 동안 백거이를 바라보고 나서 말하기를 장안은 물가가 비싸 살기도 아주 쉽지 않을 텐데.[米價方貴 居亦不易]’라고 농담을 하더니(白居易 이름을 희롱한 것이다.), 시권(詩卷첫 수의 咸陽原上草(함양원상초一歲一枯榮(일세일고영野火燒不盡(야화소부진春風吹又生(춘풍취우생)’이란 구절을 보고는 바로 감탄하며, ‘이런 언어를 말하니 살기 쉽겠구나.’라고 하였다이로 인해 칭찬이 퍼져 명성이 크게 떨쳤다.

[白尙書應擧 初至京 以詩謁顧著作況 顧睹其名 熟視白公曰 米價方貴 居亦不易 乃披卷首篇曰 咸陽原上草 一歲一枯榮 野火燒不盡 春風吹又生 卽嗟賞曰 道得个語 居卽易矣 因爲之延譽 聲名大振]”

 

후세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고황은 정원 5년에 요주(饒州사호참군(司戶參軍)으로 폄직(貶職)되었고 백거이는 이 이전에는 장안에 오지 않았다고 한다따라서 당대(唐代기록에 따라 저작시기를 확정하는 데 회의적인 의견이 있다.

 

한편 백거이가 강남에 있을 때 지었다고 보기도 한다백거이는 정원 5년에 아버지를 따라 구주(衢州)에 있었는데이때 요주(饒州)로 폄직되어 부임하는 고황(顧況)이 소주(蘇州), 항주(杭州), 목주(睦州)를 거쳐 구주(衢州)를 경유하게 된다이 시기에 백거이가 고황을 배알했을 가능성이 높아 고황과 관련된 이야기가 생겼고 저작시기도 이때로 보는 것이다.

 

굴원(屈原)의 楚辭(초사)≫ 이후 풀은 이별과 관련된 은유로 상징이 되다시피 했다소년 백거이는 그 전통을 이어 離離(이리)’, ‘萋萋(처처)’, ‘遠芳(원방)’, ‘晴翠(청취)’ 등 풀에 대한 다채로운 표현을 사용하면서 전통을 이었다. ‘野火燒不盡(야화소부진春風吹又生(춘풍취우생)’이란 구절이 유명한데, ‘吹又生(취우생)’은 경구(警句)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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