柘枝妓
平鋪一合錦筵開, 펼쳐진 비단 자리(舞筵) 순식간에 접히더니
連擊三聲畫鼓催. 연이어 세 번의 북장단 빨라지네.
紅蠟燭移桃葉起, 붉은 촛불 일렁이고, 복숭아 꽃잎피더니
紫羅衫動柘枝來. 자색 소매자락 펄럭이며, 자지무를 추는 기녀 나타났네.
帶垂鈿胯花腰重, 허리에서 허벅지로 늘어뜨린 겹겹의 비취장식이며,
帽轉金鈴雪面回. 모자에 달린 금방울사이로 언뜻보이는 눈같이 하얀 얼굴이여.
看即曲終留不住, 음악이 다하도록 보고도, 여전히 여운은 남아
雲飄雨送向陽臺. 운우의 정은 양대로 이끄네.
☞ 陽臺 :
남녀가 동침하는 것을 말한다. 초 양왕(楚襄王)이 일찍이 고당(高唐)에서 놀다가 낮잠을 잤는데, 꿈에 한 부인이 와서 “저는 무산(巫山)의 여자로서 임금님이 여기 계시다는 소문을 듣고 왔으니, 침석(枕席)을 같이해 주십시오.” 하므로, 임금은 하룻밤을 그와 함께 잤다. 그 이튿날 아침에 부인이 떠나면서 “저는 무산의 양지쪽 높은 언덕에 사는데 매일 아침이면 구름이 되고 저녁이면 비가 됩니다.” 하였다는 고사이다. <高唐賦 竝書>
[解說]
자지기(柘枝妓), 자지무(柘枝舞)를 추는 기녀라는 백거이의 작품입니다. 김용(金鏞)의 소설 『비호외전(飛狐外傳)』에서 호비(胡斐), 원자의(袁紫衣), 정영소(程靈素)가 비를 피해 봉천남(鳳天南)의 서재에 들어섰을때, 남쪽 벽에 걸린 동기창(董基昌)의 그림 사녀도(仕女圖)위에 축지산(祝枝山)의 글씨로 백거이의 이 싯구가 적혀있죠. 정영소는 싯구를 읽으며 붉은 촛불(紅蠟燭)과 탁자위의 촛불 그리고 원자의의 자색 비단소매를 대비하며 묘한 질투(?)의 심리로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 시안(西安)은 비단길(Seidenstraße)의 출발점으로(정수일교수는 경주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동서교역의 중심지였고, 수많은 서역의 문물들이 전파되어 유통되는 국제적인 도시였습니다. 자지무(柘枝舞)도 문헌상으로는 석국(石), 'City of stone'의 뜻이라는 타슈켄트(Tashkent)에서 비롯되어, 중국을 거쳐 고려시대에는 연화대무(蓮花臺舞)라는 불교와 왕실의 연희양식으로 정착된 춤이라는군요.
백거이가 자지무를 추는 서역의 미녀를 보며 지은 작품인 것 같은데, 자지무나 연화대무에 대해서는 본 적도 아는 것도 없어서 해석이 좀 모호합니다.-.-;;
동기창(董其昌 1555~1636)은 명(明)대의 최고의 화가이자 서예가이며 탁월한 감식안을 가졌던 인물이고,『비호외전』에서 백거이의 싯구로 대련을 쓴 것으로 언급되는 축지산 축윤명(祝允明 1460~1526)의 서법을 잇기도 했다는군요. 축윤명은 당백호(唐伯虎), 문징명(文徵明), 서정경(徐禎卿)과 함께 명나라때 강남4대재자(江南四大才子)로 꼽히던 인물이었고, 오른손이 육손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호를 지산(枝山)으로 한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