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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經/大雅

文王之什 · 文王有聲

by 柳川 2019. 4. 13.

                                     文王之什

 

文王有聲

 

文王有聲,遹駿有聲,                문왕의 명성이 컸으니

遹求厥寧,遹觀厥成。                편안함을 구하여 그 이룸을 보았도다.

文王烝哉!                            문왕은 임금다우셨도다.

 

遹 : 좇을 휼(율)/간사할 술. 좇다. 의지함. 비뚤다. 그대로 따르다. 이에(발어사). 왕래하는 모양. [술]간사하다. 간휼함. 

 

文王受命,有此武功;                문왕이 천명을 받아 이 무공을 이루니,

旣伐于崇,作邑于豐。                이미 숭을 정벌하여 풍에 도읍하였노라.

文王烝哉!                            문왕은 임금다우셨도다.

 

筑城伊淢,作豐伊匹,                성을 쌓고 해자를 파서 풍을 걸맞게 하니

匪棘其欲,遹追來孝。                바라는 것을 서두르지 않고 선대의 업적을 좇아 효를 이뤘노라.

王后烝哉!                            왕후(文王)는 임금다우셨도다.

 

淢 : 빨리흐를 역. 빨리 흐르다. 빠른 흐름. 거스르다. 거슬러 흐르게 함. 마음이 우울해지다. 슬퍼함. 소심함. 해자. 도랑.

 

王公伊濯,維豐之垣。                왕의 공이 이토록 빛남은 오로지 풍에 성을 쌓음이로다.

四方攸同,王后維翰。                사방이 하나가 되어 왕의 기둥이 되었도다.

王后烝哉!                            왕후는 임금다우셨도다.

 

濯 : 아름답다. 빛나다. 크다.      翰 : 줄기, 기둥.

 

豐水東注,維禹之績。                풍수가 동으로 흐르니 우왕의 공적이로다. 

四方攸同,皇王維辟。                사방이 하나 되어 황왕(武王)으로 임금을 삼으셨노라.

皇王烝哉!                            황왕이 임금다웠도다.

 

鎬京辟癰,自西自東,                호경에 벽옹이 있어, 서쪽에서 동쪽에서,

自南自北,無思不服。                남쪽에서 북쪽에서 복종하지 않음이 없었노라.

皇王烝哉!                            황왕이 임금다웠도다. 

 

考卜維王,宅是鎬京。                왕이 점을 치고 헤아려, 호경에 거처했도다.

維龜正之,武王成之。                거북점이 결정하고 무왕이 이루었노라.

武王烝哉!                            무왕은 임금다웠도다.

 

豐水有芑,武王豈不仕?             풍수에 씀바귀가 있으니 무왕이 어찌 일하지 않았겠는가?

詒厥孫謀,以燕翼子。                자손에게 계책을 일러 자식을 편안히 하고 공경하게 하였노라.

武王烝哉!                            무왕이 임금다웠도다.

 

 

[註]

 

文王有聲,遹駿有聲,遹求厥寧,遹觀厥成。文王烝哉!

문왕유성, 휼준유성, 휼구궐녕, 휼관궐성。 문왕증재 !

 

문왕이 명성을 두심이 마침내 크게 명성을 두셨다.  마침내 그 편안함을 구하시어  마침내 그 성공을 보시니 문왕은 인군다우

셨다.

 

○賦也。遹義未詳。疑與聿同。發語詞。駿、大也。烝、君也。

○此詩言文王遷豐、武王遷鎬之事、而首章推本之曰、文王之有聲也。甚大乎其有聲也。蓋以求天下之安寧、而觀其成功耳。文王之德如

  是。信乎其克君也哉。

 

부라. 휼은 뜻이 자세하지 못하니 아마도 마침내 율과 더불어 같으니 발어사라. 준은 큼이고, 증은 인군이라.

이 시는 문왕이 풍으로 옮기고 무왕이 호경으로 옮긴 일을 말하고, 머릿장에 근본을 미루어 말하기를 문왕이 명성을 둠이 그 둔 명성보다 

  심히 크니 대개 천하의 안녕을 구하여 그 성공을 봄이라. 문왕의 덕이 이와 같으니 진실로 그 능히 인군답도다.’고 함이라.

 

文王受命,有此武功;既伐于崇,作邑于豐。文王烝哉!

문왕수명, 유차무공 ; 기벌우숭, 작읍우풍。 문왕증재 !

 

문왕이 명을 받으시어 이 무공을 두셨다. 이미 숭나라를 정벌하시고 풍에 읍을 지으시니 문왕은 인군다우셨다.

 

○賦也。伐崇事、見皇矣篇。作邑、徙都也。豐、卽崇國之地。在今鄠縣杜陵西南。

 

부라. 숭나라를 친 일은 황의편에 나타나느니라. 작읍은 도읍을 옮김이라. 풍은 곧 숭나라의 땅이니 지금 호현 두릉의 서남쪽에 있느니라.

 

筑城伊淢,作豐伊匹,匪棘其欲,遹追來孝。王后烝哉!

축성이역, 작풍이필, 비극기욕, 휼추래효。 왕후증재 !

 

도랑을 따라 성을 쌓으시고 풍 땅을 걸맞게 하시니 그 하고자 함을 급히 하지 않음이라. 선대의 업적을 따라 효를 이루셨으니 

왕후는 인군다우셨다.

 

○賦也。淢、城溝也。方十里爲城。城閒有溝、深廣各八尺。匹、稱。棘、急也。王后、亦指文王也。

○言文王營豐邑之城。因舊溝爲限而築之。其作邑居、亦稱其城而不侈大。皆非急成己之所欲也。特追先人之志、而來致其孝耳。

 

부라. 역은 성의 도랑(해자)이니, 사방 10리를 성이라 하고, 성 사이에 도랑이 있으니 깊이와 넓이가 각 여덟 자라. 필은 걸맞음이고, 극은 

  급함이라. 왕후는 또한 문왕을 가리킴이라. 

말하기를, ‘문왕이 풍읍의 성을 경영함에 옛 도랑으로 인하여 경계를 삼고 그 성을 쌓고 그 읍을 짓고 거함에 또한 그 성에 걸맞게 하고 사

  치하고 크게 하지 아니하니 다 급히 자기가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특히 선인의 뜻(아버지인 王季가 부지런히 행한 

  효)을 따르고 그 효를 이루게 하였을 뿐이라.’고 함이라.

 

王公伊濯,維豐之垣。四方攸同,王后維翰。王后烝哉!

왕공이탁, 유풍지원。 사방유동, 왕후유한。 왕후증재 !

 

왕의 공이 저토록 밝게 드러남은 오직 풍 땅에 담을 쌓음이라. 사방이 함께 하여 왕후를 기둥으로 삼으니 왕후는 인군다우셨다. 

 

○賦也。公、功也。濯、著明也。

○王之功所以著明者、以其能築此豐之垣故爾。四方於是來歸、而以文王爲楨榦也。

 

부라. 공은 공이라. 탁은 저명함이라. 

왕의 공이 밝게 드러난 까닭은 그 능히 이 풍 땅에 담을 쌓았기 때문이니, 사방이 이에 돌아와 문왕으로 정간을 삼았느니라. 

 기둥 정, 담을 쌓을 때 양쪽에 세우는 기둥

 

豐水東注,維禹之績。四方攸同,皇王維辟。皇王烝哉!

풍수동주, 유우지적。 사방유동, 황왕유벽。 황왕증재 !

 

풍수가 동으로 흐르니 오직 우임금의 공적이로다. 사방이 함께 하여 황왕으로 임금을 삼으니 황왕은 인군다우셨다.

 

○賦也。豐水東北流、徑豐邑之東、入渭而注于河。績、功也。皇王、有天下之號。指武王也。辟、君也。

○言豐水東注、由禹之功。故四方得以來同於此、而以武王爲君。此武王未作鎬京時也。

 

부라. 풍수는 동북쪽으로 흘러 풍읍의 동쪽을 지나 위수로 들어갔다가 하수로 흘러 들어가느니라. 적은 공이라. 황왕은 천하를 둔 호칭이니 

  무왕을 가리킴이라. 벽은 인군이라. 

말하기를, ‘풍수가 동쪽으로 들어감은 우임금의 공으로 말미암음이라. 그러므로 사방이 이에 와서 같이 하고 무왕을 인군으로 삼았다.’고 함

  이라. 이는 무왕이 아직 호경을 짓지 아니했을 때라.

 

鎬京辟癰,自西自東,自南自北,無思不服。皇王烝哉!

호경벽옹, 자서자동, 자남자북, 무사불복。 황왕증재 !

호경의 벽옹에 서로부터 하며 동으로부터 하며 남으로부터 하며 북으로부터 하여 생각함에 복종하지 아니함이 없으니 황왕은 

인군다우셨다.

 

[참고] 

맹자는 공손추상편 제3장에서 위 문장을 인용하여 

以力服人者 非心服也. 力不贍也, 以德服人者 中心 悅而誠服也, 如七十子之服孔子也. 詩云自西自東 自南自北 無思不服. 此之謂也.

(힘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복종한 자는 마음으로 복종함이 아니라 힘이 넉넉하지 못해서이고, 덕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복종한 자는 속마음이 

기뻐서 진실로 복종함이니, 칠십 제자가 공자에게 복종한 것과 같음이라. 시에 이르기를, ‘서로부터 하고 동으로부터 하며 남으로부터 하고 북

으로부터 함이 생각에 복종하지 않음이 없다.’하니 이를 이름이니라.)고 했다.

 

○賦也。鎬京、武王所營也。在豐水東、去豐邑二十五里。張子曰、周家自后稷居邰、公劉居豳、大王邑岐、而文王則遷于豐、至武王又

  居于鎬。當是時、民之歸者日衆。其地有不能容、不得不遷也。辟廱、說見前篇。張子曰、靈臺辟廱、文王之學也。鎬京辟廱、武王之

  學也。至此始爲天子之學矣。無思不服、心服也。孟子曰、天下不心服而王者、未之有也。

○此言武王徙居鎬京、講學行禮、而天下自服也。

 

부라. 호경은 무왕이 경영한 곳이니 풍수의 동쪽에 있어서 풍읍과의 거리는 25리라. 장자가 주나라 왕실이 후직이 태에서 거함으로부터 

  공유가 빈에서 거처하고 태왕이 기에 읍을 정하고 문왕이 풍으로 옮기더니 무왕에 이르러서는 또한 호경에 거하셨느니라. 이때를 당하여 

  백성들이 돌아오는 자가 날로 많아져 그 땅이 능히 수용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부득이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니라. 벽옹은 설명이 전

  편에 있느니라. 장자가 영대와 벽옹은 문왕의 학궁이고, 호경의 벽옹은 무왕의 학궁이니, 이에 이르러 비로소 천자의 학궁이 되었다.”고 하

  니라. 무사불복은 마음으로 복종함이니, 맹자께서 천하가 마음으로 복종하는데도 왕 하지 못할 자는 있지 않다(離婁下편 제16).”고 하셨

  느니라. 

이는 무왕이 호경으로 옮겨 거처하여 학문을 강하고 예를 행하니 천하가 스스로 복종함을 말함이라.

 

考卜維王,宅是鎬京。維龜正之,武王成之。武王烝哉!

고복유왕, 택시호경。 유귀정지, 무왕성지。 무왕증재!

 

점을 살펴보신 왕이 이 호경에 거처하셨다. 오직 거북점이 결정하거늘 무왕이 지으시니 무왕은 인군다우셨다.

 

○賦也。考、稽。宅、居。正、决也。成之、作邑居也。張子曰、此舉諡者、追述其事之言也。

부라. 고는 상고함이고, 택은 거처함이고, 정은 결정함이라. 성지는 읍을 지어 거처함이라. 장자가 이 시호를 든 것은 그 일을 추술하여 말함이라.”

  고 하니라.

 

豐水有芑,武王豈不仕?詒厥孫謀,以燕翼子。武王烝哉!

풍수유기, 무왕기불사? 이궐손모, 이연익자。 무왕증재!

 

풍수에 씀바귀가 있으니 무왕이 어찌 일하지 아니 하셨으리오. 그 자손에게 계책을 내리시어 공경히 하는 자식을 편안하게 하시

니 무왕은 인군다우셨다.

 

○興也。芑、草名。仕、事。詒、遺。燕、安。翼、敬也。子、成王也。

○鎬京猶在豐水下流。故取以起興。言豐水猶有芑、武王豈無所事乎。詒厥孫謀、以燕翼子、則武王之事也。謀及厥孫、則子可以無事矣。

  或曰、賦也。言豐水之傍、生物繁茂。武王豈不欲有事於此哉。但以欲遺孫謀、以安翼子。故不得而不遷耳。

 

흥이라. 기는 풀이름이라. 사는 일이고, 이는 끼침이고, 연은 편안함이고, 익은 공경함이라. 자는 성왕이라. 

호경에 오히려 풍수가 있어 아래로 흐르느니라. 그러므로 취하여 흥을 일으킴이라. 말하기를, ‘풍수에도 오히려 씀바귀가 있거늘 무왕이 어찌 

  일하는 바가 없으랴!(孔氏曰豐水 猶以潤澤 生芑菜 況武王 豈不以澤及後人爲事乎. : 공씨는 풍수가 오히려 윤택하여 기풀이 자라거늘 하물며 

  무왕이 어찌 은택을 후인에게 미치도록 일하지 아니하랴.”고 하니라) 그 후손에게 계책을 내려 공경히 하는 자식을 편안하게 하셨으니 이는 무

  왕의 일이라. 계책이 그 손자에게까지 미치니 자식이 가히 무사하였다.’고 함이라. 어떤 이는 부시니, 풍수의 가에도 생물이 번무하거늘 무왕이 

  어찌 이에 일을 두고자 아니 했겠는가? 다만 후손들에게 계책을 남겨 공경하는 자식을 편안히 함이라. 그러므로 옮기지 아니할 수 없다.”고 함이

  라. (문왕유성8장이라)

 

 

文王有聲八章章五句。

此詩以武功稱文王。至于武王、則言皇王維辟、無思不服而已。蓋文王旣造厥始、則武王續而終之無難也。又以見文王之文、非不足於武。

而武王之有天下、非以力取之也。

이 시는 무공으로 문왕을 칭찬하고, 무왕에 이르러서는 황왕으로 임금을 삼아서 생각함에 복종하지 않는 이가 없다고 했으니, 대개 문왕이 

이미 그 시작을 지었다면 곧 무왕이 이어서 마침에 어려움이 없음이라. 또한 문왕의 문은 무에도 족하지 않음이 없었고, 무왕이 천하를 둔 

것은 힘으로 취한 것이 아니었음을 나타냈느니라.

 

文王之什十篇六十六章四百一十四句。

鄭譜、此以上爲文武時詩、以下爲成王周公時詩。今按文王首句、卽云文王在上、卽非文王之詩矣。又曰、無念爾祖、則非武王之詩矣。

大明有聲幷言文武者非一。安得爲文武之時所作乎。蓋正雅皆成王周公以後之詩。但此什皆爲追述文武之德。故譜因此而誤耳。

 

정보(鄭玄 詩譜)에 이 이상은 문무 때에 지은 시라 하고, 이하는 성왕과 주공 때에 지은 시라 하니, 이제 문왕편의 글머리에 문왕이 위에 

계시사 하니 곧 문왕 때에 지은 시가 아니고,  네 할아버지를 생각지 아니하랴 하니 곧 무왕 때에 지은 시도 아니며, 대명과 문왕유성은 

아울러 문무를 말한 것이 하나가 아니니, 어찌 문무 때에 지은 바가 되겠는가. 대개 정아는 다 성왕과 주공 이후의 시이고, 다만 이 열 편은 

다 문무의 덕을 추술한 것이라. 그러므로 정보는 이로 볼 때 잘못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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