卷四三. 趙世家[趙의 선조]
趙氏之先, 與秦共祖. 至中衍,1) 為帝大戊御. 其後世蜚廉有子二人, 而命其一子曰悪來, 事紂, 為周所殺, 其後為秦. 悪來弟曰季勝, 其後為趙.
조씨(趙氏)의 선대(先代)는 진(秦)나라와 조상이 같다. 중연(中衍)에 이르러 은(殷)나라 대무(大戊)의 마부가 되었다. 그의 후예 비렴(蜚廉)은 두 아들을 두었는데 그중 한 아들의 이름을 오래(惡來)라고 지었다. 오래는 주왕(紂王)을 섬기다가 주(周)나라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했으니, 그 후 손이 바로 진(秦)나라의 선조가 되었다. 오래의 동생은 이름이 계승(季勝)이었는데, 그의 후손은 조(趙)나라의 선조가 되었다.
季勝生孟増. 孟増幸於周成王, 是為宅皐狼.2) 皐狼生衡父, 衡父生造父. 造父幸於周繆王. 造父取驥之乗匹,3) 與桃林4)盗驪、驊騮、綠耳, 献之繆王. 繆王使造父御, 西巡狩, 見西王母,5) 樂之忘帰. 而徐偃王反,6) 繆王日馳千里馬, 攻徐偃王,7) 大破之. 乃賜造父以趙城,8) 由此為趙氏.
계승은 맹증(孟增)을 낳았다. 맹증은 주 성왕(周成王)의 총애를 받았으니 그가 바로 택고랑(宅皐狼)이다. 고랑은 형보(衡父)를 낳고, 형보는 조보(造父)를 낳았다. 조보는 주 목왕(周繆王)의 총애를 받았다. 그는 도림(桃林)의 도려(盜驪), 화류(驊騮), 녹이(綠耳) 등 여덟 필의 준마를 얻어 목왕에게 바쳤다. 목왕은 조보를 마부로 삼고 서쪽을 순수(巡狩)하던 중, 서왕모(西王母)를 만나 함께 즐거이 노닐다가 돌아갈 것을 잊었다. 이때 서언왕(徐偃王)이 반란을 일으키자, 목왕은 마차를 타고 하루에 천리 길을 달려가서 서언왕을 공격해 대파했다. 그리고는 조보에게 조성(趙城)을 하사했으니 이로부터 조씨 성을 가지게 되었다.
自造父已下六世至奄父, 曰公仲, 周宣王時伐戎, 為御. 及千畝戦,9) 奄父脱宣王. 奄父生叔帯. 叔帯之時, 周幽王無道, 去周如晉, 事晉文侯, 始建趙氏于晉国.
조보로부터 6대 후손인 엄보(奄父)는 자(字)가 공중(公仲)이며, 주 선왕(周宣王)이 융(戎)을 정벌할 때 그의 마부 노릇을 했다. 엄보는 천무(千畝)에서의 전쟁에서 선왕을 위험에서 벗어나게 했다. 엄보는 숙대(叔帶)를 낳았다. 숙대 때에 주 유왕(周幽王)이 황음무도하자, 그는 주나라를 떠나 진(晉)나라로 가서 진 문후(晉文侯)를 섬기니 이로써 진나라에서 조씨(趙氏) 가문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自叔帯以下, 趙宗益興, 五世而(生)[至]趙夙.
숙대 이래 조씨 종족은 더욱 흥성했으며 5대를 지나 조숙(趙夙)에 이르게 된다.
趙夙, 晉献公之十六年伐霍、魏、耿, 而趙夙為将伐霍. 霍公求奔斉.10) 晉大旱, 卜之, 曰「霍太山為祟」. 使趙夙召霍君於斉, 复之, 以奉霍太山之祀, 晉复穣. 晉献公賜趙夙耿.11)
진 헌공(晉獻公) 16년에 진(晉)나라가 곽(霍), 위(魏), 경(耿) 등 삼국을 정벌할 때, 조숙은 장군이 되어 곽나라를 공격했다. 곽공(霍公) 구(求)는 제(齊)나라로 도망했다. 그해 진(晉)나라에 크게 가뭄이 들어 점을 치자, “곽태산(霍太山) 신령님께서 재앙을 내리셨다.”라는 점괘가 나왔다. 그리하여 헌공은 조숙을 제나라에 파견해 곽공을 소환하고, 그의 군주 지위를 회복시켜 곽태산 신령에게 제사를 봉헌하게 하니 진나라에는 다시 풍년이 들었다. 진 헌공은 조숙에게 경(耿)나라 땅을 하사했다.
夙生共孟, 當魯閔公之元年也. 共孟生趙衰, 字子余.12)
조숙이 공맹(共孟)을 낳은 것은 바로 노 민공(魯閔公) 원년의 일이었다. 공맹은 조최(趙衰)를 낳고 자를 자여(子餘)라 했다.
각주
1 正義中音仲.
2 集解徐広曰:「或云皐狼地名, 在西河.」 索隠按:如此説, 是名孟増号宅皐狼. 而徐広云「或曰皐狼地名, 在西河」. 按地理志, 皐狼是西河郡之県名, 蓋孟増幸於周成王, 成王居之於皐狼, 故云皐狼.
3 索隠言造父取八駿, 品其色, 斉其力, 使馴調也. 並四曰乗, 並両曰匹. 正義乗, 食証反. 並四曰乗, 両曰匹. 取八駿品其力, 使均馴.
4 正義括地志云:「桃林在陝州桃林県, 西至潼関, 皆為桃林塞地. 山海経云夸父之山, 北有林焉, 名曰桃林, 広闊三百里, 中多馬, 造父於此得驊騮、騄耳之乗献周穆王也.」
5 索隠穆天子傳曰「穆王與西王母觴於瑶池之上, 作歌」, 是樂而忘帰也. 譙周不信此事, 而云「余常聞之, 代俗以東西陰陽所出入, 宗其神, 謂之王父母. 或曰地名, 在西域, 有何見乎」.
6 正義括地志云:「大徐城在泗州徐城県北三十里, 古之徐国也. 博物志云:『徐君宮人娠, 生卵, 以為不祥, 棄於水浜. 孤独母有犬名鵠倉, 銜所棄卵以帰, 覆煖之, 遂成小児, 生偃王. 故宮人聞之, 更収養之. 及長, 襲為徐君. 後鵠倉臨死生角而九尾, 実黄竜也. 鵠倉或名后倉也』.」
7 索隠譙周曰:「徐偃王與楚文王同時, 去周穆王遠矣. 且王者行有周衛, 豈聞亂而独長駆日行千里乎?」並言此事非実也.
8 正義晉州趙城県即造父邑也.
9 正義括地志云:「千畝原在晉州岳陽県北九十里也.」
10 集解徐広曰:「求, 一作『來』.」
11 索隠杜預曰:「耿, 今河東皮氏県耿郷是.」
12 索隠系本云公明生共孟及趙夙, 夙生成季衰, 衰生宣孟盾. 左傳云衰, 趙夙弟. 而此系家云共孟生衰, 譙周亦以此為誤耳
'中國歷史와文學 > 史記世家' 카테고리의 다른 글
史記 卷四三. 趙世家[趙武] (0) | 2019.06.23 |
---|---|
史記 卷四三. 趙世家[趙衰 ~ 趙朔] (0) | 2019.06.23 |
史記 卷四二. 鄭世家[聲公 ~] (0) | 2019.06.23 |
史記 卷四二. 鄭世家[定公] (0) | 2019.06.23 |
史記 卷四二. 鄭世家[釐公 · 簡公] (0) | 2019.0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