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21章
孟子曰, 「廣土衆民, 君子欲之, 所樂不存焉。中天下而立, 定四海之民, 君子樂之, 所性不存焉。君子所性, 雖大行不加焉, 雖窮居不損焉, 分定故也。君子所性, 仁義禮智根於心。其生色也睟然見於面, 盎於背, 施於四體, 四體不言而喩。」
맹자가 말했다.
"넓은 땅과 많은 백성들은 군자가 바라는 것이지만, 즐거워하는 것은 그에 있지 않다. 천하의 가운데에 서서 천하의 백성을 안정시키는 것은 군자가 즐거워하는 것이지만, 본성으로 여기는 것은 그에 있지 않다. 군자가 본성으로 여기는 것은, 그 도가 크게 행해지더라도 더 늘어나지 않으며, 어렵게 지내더라도 줄어들지 않으니 분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군자가 본성으로 여기는 것은 인의예지가 마음에 뿌리를 박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안색이 되어 얼굴에 환하게 드러나고, 등에 넘쳐서, 온몸에 퍼져 온몸이 말하지 않아도 깨닫는다."
○地闢民聚, 澤可遠施故, 君子欲之. 然 未足以爲樂也.
○땅이 열리고 백성이 모여 은택이 가히 멀리까지 베풀어지는 고로 군자가 하고자 하나 그러나 족히 써 즐거움이 되지 못하니라.
中天下而立, 定四海之民, 君子樂之, 所性不存焉。
천하의 가운데에 서서 천하의 백성을 안정시키는 것은 군자가 즐거워하는 것이지만, 본성으로 여기는 것은 그에 있지 않다.
○其道大行, 無一夫不被其澤. 故 君子樂之. 然 其所得於天者, 則不在是也.
○그 도가 크게 행하여 한 남자라도 그 은택을 입지 못함이 없음이라. 그러므로 군자가 즐거워하나 그러나 그 하늘에서 얻은 바라면 이에 있지 아니하니라.
君子所性, 雖大行不加焉, 雖窮居不損焉, 分定故也。
군자가 본성으로 여기는 것은, 그 도가 크게 행해지더라도 더 늘어나지 않으며, 어렵게 지내더라도 줄어들지 않으니 분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分者 所得於天之全體. 故 不以窮達而有異.
○분이라는 것은 하늘에서 얻은 바의 전체라. 그러므로 궁함과 영달로써 다름이 있지 아니하니라.
君子所性, 仁義禮智根於心。其生色也睟然見於面, 盎於背, 施於四體, 四體不言而喩。
군자가 본성으로 여기는 것은 인의예지가 마음에 뿌리를 박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안색이 되어 얼굴에 환하게 드러나고, 등에 넘쳐서, 온몸에 퍼져 온몸이 말하지 않아도 깨닫는다.
睟 : 바로 볼 수, 바로 보는 모양. 눈이 청명하다. 윤이 나는 모양. 순수하다. 睟然 : 함치르르한 모양, 윤이 나는 모양.
盎 : 동이 앙, 동이. 성한 모양. 넘치다. 가득차다.
○上言所性之分, 與所欲所樂 不同, 此 乃言其蘊也. 仁義禮智 性之四德也. 根 本也. 生 發見也. 睟然 淸和潤澤之貌. 盎 豊厚盈溢之意. 施於四體, 謂見於動作威儀之間也. 喩 曉也. 四體不言而喩, 言四體不待吾言而自能曉吾意也. 蓋氣稟淸明, 無物欲之累, 則性之四德, 根本於心, 其積之盛, 則發而著見於外者, 不待言而無不順也. 程子曰, 睟面盎背, 皆積盛致然, 四體不言而喩 唯有德者, 能之.
○此章 言君子固欲其道之大行, 然 其所得於天者, 則不以是而有所加損也.
蘊 : 쌓을 온. 쌓다. 모으다. 저축함. 간직하다. 감춤. 받아들이다. 포용함. 맺히다. 우울해짐. 깊은 속, 깊은 속내. 덥다. 따뜻함. 우거지다.
○위에서는 성의 나뉘는 바가 더불어 하고자 하는 바와 즐거워하는 바가 같지 아니하고, 이것은 마침내 그 쌓임을 말함이라. 인의예지는 성의 사덕이라. 근은 뿌리라. 생은 발현이라 수연은 맑고 온화하며 윤택한 모양이라. 앙은 풍부하고 두터우며 가득차서 넘친다는 뜻이라. 사체에 베풀어짐은 동작과 위엄있는 모양 사이에 나타남을 이름이라. 유는 깨달음이라. 사체가 말하지 아니하여도 깨달음은 사체가 내 말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스스로 능히 내 뜻을 깨달음을 말함이라. 대개 기품이 청명하여 물욕의 허물이 없으면 성의 사덕이 마음에 근본하니 그 쌓임이 성하면 발해서 밖에 드러남이 말을 기다리지 아니하고도 순하지 아니함이 없느니라. 정자 가라사대 함치르르한 얼굴과 넘치는 등은 다 쌓고 성하고 이룬 것이니, 사체가 말하지 아니하여도 깨우침은 오직 덕있는 자라야 능하니라.
○이 장은 군자가 진실로 그 도가 크게 행해지기를 바라나 그러나 그 하늘에서 얻은 바가 이로써 더해지거나 덜어지는 바가 있지 아니함을 말씀함이라.
第22章
孟子曰, 「伯夷辟紂, 居北海之濱, 聞文王作興曰, 『盍歸乎來 ! 吾聞, 西伯善養老者。』 太公辟紂, 居東海之濱, 聞文王作興曰, 『盍歸乎來! 吾聞, 西伯善養老者。』 天下有善養老, 則仁人以爲己歸矣。五畝之宅樹墻下以桑, 匹婦蠶之, 則老者足以衣帛矣, 五母鷄二母彘, 無失其時, 老者足以無失肉矣, 百畝之田匹夫耕之, 八口之家可以無饑矣。所謂 西伯善養老者, 制其田里, 敎之樹畜, 導其妻子使養其老, 五十非帛不煖, 七十非肉不飽, 不煖不飽 謂之凍餒, 文王之民, 無凍餒之老者, 此之謂也。」
맹자가 말했다.
"백이가 주왕을 피하여 북해의 물가에서 살았는데, 주나라 문왕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말했다.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내가 듣건대, 서백(주문왕)은 노인들을 잘 봉양한다고 하였다.' 강태공은 주왕을 피해 동해의 물가에서 살았는데, 문왕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말했다.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내가 듣건대, 서백(주문왕)은 노인들을 잘 봉양한다고 하였다.' 천하에 노인들을 잘 봉양하는자가 있으면, 어진 사람들이 자기가 돌아갈 곳으로 삼았다.
오 묘의 집 담 밑에 뽕나무를 심고, 아낙이 누에를 치면 노인이 비단옷을 입는데 족하고, 다섯 마리의 암닭과 두마리의 암돼지를 새끼 칠 때를 잃지 않고 기르면, 노인이 밥상에 고기를 빠뜨리지 않고 먹기에 족하며, 백묘의 밭에 장정이 농사를 지으면, 여덟 식구의 가정이 굶주리지 않을 수 있다. 이른바 서백이 노인을 잘 봉양한다고 하는 것은, 농지와 집터의 제도를 도입하고, 농사짓고 가축을 기르는 법을 가르쳐, 그 처자식을 이끌어 노인을 봉양하게 하는 것이니, 50세에 비단 옷을 입혀 따뜻하게 모시지 않음이 없고, 70세에 고기로 배부르게 하지 않음이 없으니, 따뜻하지 않고 배부르지 않으면 춥고 긂주린다고 하는데, 문왕의 백성으로 춥고 긂주린 노인이 없었다는 것은 이를 말하는 것이다."
○己歸 謂己之所歸. 餘見前篇.
○기귀는 자기가 돌아가는 곳을 이름이라. 나머지는 전편(離婁章句 上篇 제13장)에 나타나니라.
五畝之宅樹墻下以桑, 匹婦蠶之, 則老者足以衣帛矣, 五母鷄二母彘, 無失其時, 老者足以無失肉矣, 百畝之田匹夫耕之, 八口之家可以無饑矣。
오 묘의 집 담 밑에 뽕나무를 심고, 아낙이 누에를 치면 노인이 비단옷을 입는데 족하고, 다섯 마리의 암닭과 두마리의 암돼지를 새끼 칠 때를 잃지 않고 기르면, 노인이 밥상에 고기를 빠뜨리지 않고 먹기에 족하며, 백묘의 밭에 장정이 농사를 지으면, 여덟 식구의 가정이 굶주리지 않을 수 있다.
○此 文王之政也. 一家 養母鷄五, 母彘二也. 餘見前篇.
○이는 문왕의 정사라. 한 집에 어미닭 다섯 마리와 어미 돼지 둘을 기름이라. 나머지는 전편(양혜왕 장구 상 제3장, 제7장)에 나타남이라.
所謂西伯善養老者, 制其田里, 敎之樹畜, 導其妻子使養其老, 五十非帛不煖, 七十非肉不飽, 不煖不飽 謂之凍餒, 文王之民, 無凍餒之老者, 此之謂也。
이른바 서백이 노인을 잘 봉양한다고 하는 것은, 농지와 집터의 제도를 도입하고, 농사짓고 가축을 기르는 법을 가르쳐, 그 처자식을 이끌어 노인을 봉양하게 하는 것이니, 50세에 비단 옷을 입혀 따뜻하게 모시지 않음이 없고, 70세에 고기로 배부르게 하지 않음이 없으니, 따뜻하지 않고 배부르지 않으면 춥고 주린다고 하는데, 문왕의 백성으로 춥고 주린 노인이 없었다는 것은 이를 말하는 것이다.
○田 謂百畝之田, 里 謂五畝之宅. 樹 耕桑, 畜 謂鷄彘也. 趙氏曰, 善養老者, 敎導之使可以養其老耳, 非家賜而人益之也.
○전은 백 묘의 밭을 이르고, 리는 오 묘의 집을 이름이라. 수는 밭 갈고 뽕나무를 심음이고, 휵은 닭과 돼지를 이름이라. 조씨 가로대 늙은이를 잘 기른다는 것은 가르치고 인도하여 가히 써 그 늙은이를 봉양하게 하고 집집마다 하사하고 사람마다 보태주는 것이 아니니라.
第23章
孟子曰, 「易其田疇, 薄其稅斂, 民可使富也。食之以時, 用之以禮, 財不可勝用也。民非水火不生活, 昏暮叩人之門戶求水火, 無弗與者至足矣。聖人治天下, 使有菽粟如水火, 菽粟如水火, 而民焉有不仁者乎?」
맹자가 말했다.
"논밭을 잘 가꾸고 세금을 적게 거두면 백성들을 부유하게 할 수 있다. 때 맞추어 먹고 예에 맞게 쓰면 재물을 이루 다 쓰지 못할 것이다. 백성은 물과 불이 없으면 생활할 수 없는데, 해질 무렵 남의 집 문을 두드려 물과 불을 구하여도 주지 않는 자가 없는 것은 지극히 풍족하기 때문이다. 성인이 천하를 다스리는데 있어, 콩과 곡식을 소유하는 것을 물과 불처럼 풍족하게 하니, 콩과 곡식이 물과 불처럼 풍부하다면 백성들중에 어찌 어질지 않은 자가 있겠는가!"
田疇 : 밭보다 약간 높이 올라와 밭의 경계가 되고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도록 한 둑. 곡식을 심는 논밭과 삼을 심는 밭.
○易 治也. 疇 耕治之田也.
○이는 다스림이라. 주는 갈고 다스리는 밭이라.
食之以時, 用之以禮, 財不可勝用也。
때 맞추어 먹고, 예에 맞게 쓰면 재물은 이루 다 쓰지 못할 것이다.
○敎民節儉, 則財用足也.
○백성에게 절약과 검소를 가르치면 재물 씀이 족하니라.
民非水火不生活, 昏暮叩人之門戶求水火, 無弗與者至足矣。聖人治天下, 使有菽粟如水火, 菽粟如水火, 而民焉有不仁者乎?
백성은 물과 불이 없으면 생활할 수 없는데, 해질 무렵 남의 집 문을 두드려 물과 불을 구하여도 주지 않는 자가 없는 것은 지극히 풍족하기 때문이다. 성인이 천하를 다스리는데 있어, 콩과 곡식을 소유하는 것을 물과 불처럼 풍족하게 하니, 콩과 곡식이 물과 불처럼 풍부하다면 백성들중에 어찌 어질지 않은 자가 있겠는가!
○水火 民之所急, 宜其愛之, 而反不愛者 多故也. 尹氏曰, 言 禮義生於富足, 民無常産 則無常心矣.
○수화는 백성의 급한 바이니 마땅히 아껴야 함이로되 오히려 아끼지 않음은 많은 까닭이라. 윤씨 가로대 예의는 부유하고 풍족한데서 나오니 백성이 항상하는 생산이 없으면 항상하는 마음이 없느니라.
第24章
孟子曰, 「孔子登東山而小魯, 登泰山而小天下, 故觀於海者, 難爲水, 遊於聖人之門者, 難爲言。觀水有術, 必觀其瀾。日月有明, 容光必照焉。流水之爲物也, 不盈科不行, 君子之志於道也, 不成章不達。」
맹자가 말했다.
"공자가 노나라 도성의 동쪽 산에 올라 '노나라가 작다.' 하시고 태산에 올라 '천하가 작다.' 하셨다. 그러므로 바다를 본 사람에게는 큰 물이라고 여기기 어렵고, 성인의 문하에서 공부한 자에게는 훌륭한 가르침이 되기 어렵다. 물을 보는데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물결을 보아야 한다. 해와 달에는 밝음이 있는데, 빛을 받아들이는 것에는 반드시 비춘다. 흐르는 물의 성질은 웅덩이가 차지 않으면 흐르지 않는다. 군자가 도에 뜻을 두었어도 점진적으로 쌓아 나가지 않으면 뜻을 이루지 못한다."
○此 言聖人之道 大也. 東山 蓋魯城東之高山. 而太山則又高矣. 此 言有處益高則其視下益小, 所見旣大則其小者不足觀也. 難爲水, 難爲言, 猶仁不可爲衆之意.
○이는 성인의 도가 큼을 말씀하심이라. 동산은 대개 노나라 성 동쪽의 높은 산이오, 태산이즉 또한 높니라. 이는 처한 곳이 더욱 높으면 그 아래를 봄이 더욱 작아지고, 본 바가 이미 크다면 작은 것은 족히 보지 못함을 말씀하심이라. 물이 되기 어렵고, 말이 되기 어려움은 인이 가히 무리가 되지 못하는 뜻과 같음이라.
觀水有術, 必觀其瀾。日月有明, 容光必照焉。
물을 보는데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물결을 보아야 한다. 해와 달에는 밝음이 있는데, 빛을 받아들이는 것에는 반드시 비춘다.
瀾 : 물결 란. 물결. 큰 파도. 물놀이. 잔물결. 물결이 일다. 잇닿다. 눈물흐르는모양. 뜨물, 쌀뜨물. 넓고 많은 모양.
○此 言道之有本也. 瀾 水之湍急處也. 明者 光之體, 光者 明之用也, 觀水之瀾, 則知其源之有本矣, 觀日月於容光之隙, 無不照則知其明之有本矣.
○차는 도가 뿌리가 있음을 말씀함이라. 란은 물의 여울이 급한 곳이라. 명이라는 것은 빛의 체요, 광이라는 것은 명의 용이라. 물의 물결을 본다면 그 바탕의 뿌리가 있음을 알 것이오, 해와 달이 빛을 용납하는 틈에 비추지 아니함이 없음을 본다면 그 밝음의 뿌리가 있음을 알지니라.
流水之爲物也, 不盈科不行, 君子之志於道也, 不成章不達。
흐르는 물의 성질은 웅덩이가 차지 않으면 흐르지 않는다. 군자가 도에 뜻을 두었어도 점진적으로 쌓아 나가지 않으면 뜻을 이루지 못한다.
○言學 當以漸, 乃能之也. 成章 所積者厚而文章外見也. 達者足於此而通於彼也.
○此章 言聖人之道大而有本, 學之者必以其漸, 乃能至也.
○배움은 마땅히 써 점점이라야 마침내 능해짐을 말씀함이라. 성장은 쌓은 바가 두터워 문장이 밖으로 나타남이라. 달이라는 것은 이에 족해서 저에 통함이라.
○이 장은 성인의 도가 크고 뿌리가 있으니 배우는 자 반드시 써 그 점점하여 마침내 능히 이름을 말씀함이라.
第25章
孟子曰, 「鷄鳴而起, 孶孶爲善者, 舜之徒也, 鷄鳴而起, 孶孶爲利者, 蹠之徒也。欲知舜與蹠之分, 無他利與善之間也。」
맹자가 말했다.
"닭 우는 소리에 일어나 부지런히 선을 행하는 자들은 순임금의 무리이며, 닭 우는 소리에 일어나 부지런히 이익을 추구하면 도척의 무리이다. 순임금과 도척의 나뉨을 알려면, 다른 것은 없고 이익을 추구하는가와 선을 행하는가의 차이이다."
孶 : 부지런할 자. 부지런하다. 무성하다. 증가함. 낳다. 교미하다.
○孶孶 勤勉之意. 言雖未至於聖人, 亦是聖人之徒也.
○자자는 부지런히 힘쓰는 뜻이라. 비록 성인에 이르지는 못했으나 또한 이 성인의 무리라.
鷄鳴而起, 孶孶爲利者, 蹠之徒也,
닭 우는 소리에 일어나 부지런히 이익을 추구하면 도척의 무리이다.
蹠 : 밟을 척/뛸 저. 밟다. 뛰다. 가다. 나아감. 이르다. 도달함. 발, 발바닥. 소원, 희망. 뛰다.
○蹠 盜蹠也.
○척은 도둑 척이라.
欲知舜與蹠之分, 無他利與善之間也。
순임금과 도척의 나뉨을 알려면, 다른 것은 없고 이익을 추구하는가와 선을 행하는가의 차이이다.
○程子曰, 言間者 謂相去不遠, 所爭 毫末耳. 善與利 公私而已矣, 才出於善 便以利言也.
○楊氏曰, 舜蹠之相去 遠矣, 而其分 乃在利善之間而已, 是豈可以不謹! 然 講之不熟, 見之不明, 未有不以利爲義者, 又學者所當深察也. 或 問鷄鳴而起, 若未接物, 如何爲善? 程子曰, 只主於敬 便是爲善.
○정자 가라사대 사이라는 것은 이르기를 서로의 거리가 멀지 아니하여 다투는 바가 터럭끝만할 뿐임을 말씀함이라. 선과 이는 공과 사일 뿐이니 조금만 선에서 벗어나면 곧 이로써 말함이라.
○양씨 가로대 순임금과 도척의 서로간의 거리는 머나 그 나뉨은 바로 이와 선의 사이가 있을 분이니 이 어찌 가히 써 삼가지 않으리오. 그러나 익히기를 익숙하게 아니하고 보기를 밝게 못하면, 이로써가 아니면 의를 삼는 자가 있지 아니하니, 또한 배우는 자 마땅히 깊이 살펴야 하니라. 혹이 묻기를 닭이 울면 일어나서 물건을 접하지 못한다면 어찌 선을 하리잇고? 정자 가라사대 다만 공경함에 주장함이 곧 이 선을 함이니라.
第26章
孟子曰, 「楊子取爲我, 拔一毛而利天下, 不爲也。墨子兼愛, 摩頂放踵, 利天下爲之。子莫執中, 執中爲近之, 執中無權, 猶執一也。所惡執一者, 爲其賊道也, 擧一而廢百也。」
맹자가 말했다.
"양자는 자신만을 위하는 위아(爲我)를 주장한 자이며, 자신의 털 하나를 뽑아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더라도 하지 않았다. 묵자는 겸애를 주장하였는데, 자신의 정수리를 갈아 발뒤꿈치에 이르더라도 천하가 이롭다면 하였다. 자막은 중도를 취했는데 중도를 취하는 것은 도에 가깝지만 중도를 취하고 저울질 하지 않으면 한 쪽을 취한 것과 같다. 한쪽을 고집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그것이 도를 해치기 때문이며, 하나를 행하면 나머지는 모두 버려진다."
○楊子 名 朱. 取者 僅足之意, 取爲我者 僅足於爲我而已, 不及爲人也. 列子稱其言曰, 伯成子高不以一毫利物 是也.
○양자는 이름이 주라. 취한다는 것은 겨우 만족하는 뜻이니 나를 위하여 취한다는 것은 겨우 나를 위하여 만족할 뿐이오, 다른 사람을 위하여는 이르지 못함이라. 열자가 그 말을 칭하여 가로대 백성자고(요순시절에 제후를 지내고 우가 들어서자 초야에 돌아가 농사를 지은 사람)는 한 터럭으로써 물건을 이롭게 하지 않았다 하니, 바로 이것이라.
☞ 哭岐泣練 :
楊子見岐路而哭之, 爲其可以南可以北。 墨子見練絲而泣之, 爲其可以黃可以黑. <淮南子 說林訓>
양자는 갈림길을 보고 울었는데, 그 갈림길은 남쪽으로 갈 수도 있고, 북쪽으로 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묵자는 명주실을 보고 울었는데 그것은 황색으로도 검은 색으로도 물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楊朱(BC440 ~ BC360?)
양자·양자거·양생이라고도 한다. 위(魏)나라 사람으로 중국 역사에서 철저한 개인주의자이며 쾌락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는 그가 '각자 자신만을 위한다'는 위아설을 제창했다고 맹자(BC 371경~289)가 비난한 데서 비롯되었다.
맹자는 "털 하나를 뽑아 온 천하가 이롭게 된다 하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라고 양주를 평하여 그의 이기주의를 비난했다. 그러나 전해지는 그의 말들을 모아보면 맹자의 이런 평가가 그의 사상을 얼마나 잘 이해한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양주는 방종과 방탕이 아닌 자연주의의 옹호자였다. "삶을 대하는 유일한 방식은 방해하지 말고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다"라고 하여, 즐겁게 사는 것은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며 이는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나친 탐닉은 지나친 자기 억제와 마찬가지로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고, 남을 돕든 침해하든 간에 남의 일에 끼어드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고 했다.
墨子兼愛, 摩頂放踵, 利天下爲之。
묵자는 겸애를 주장하였는데, 자신의 정수리를 갈아 발뒤꿈치에 이르더라도 천하가 이롭다면 하였다.
○墨子 名 翟. 兼愛 無所不愛也. 摩頂 摩突其頂也. 放 至也.
○묵자는 이름이 적이라. 겸애는 사랑하지 아니하는 바가 없느니라. 마정은 그 정수리를 갈고 부딪힘이라. 방은 이름이라.
子莫執中, 執中爲近之, 執中無權, 猶執一也。
자막은 중도를 취했는데 중도를 취하는 것은 도에 가깝지만 중도를 취하고 저울질 하지 않으면 한 쪽을 취한 것과 같다.
○子莫 魯之賢者也. 知楊墨之失中也. 故 度於二者之間, 而執其中. 近 近道也. 權 稱錘也, 所以稱物之輕重, 而取中也. 執中而無權, 則膠於一定之中, 而不知變, 是亦執一而已矣. 程子曰, 中字最難識, 須是黙識心通. 且試言一廳則中央爲中, 一家則廳非中而堂爲中, 一國則堂非中而國之中爲中, 推此類 可見矣. 又曰中不可執也, 識得則事事物物 皆有自然之中, 不待安排 按排著則不中矣.
○자막은 노나라의 현자이니 양주와 묵적이 중을 잃었음을 아니라. 그러므로 두 가지 사이를 헤아려 그 중을 잡았느니라. 근은 도에 가까우니라. 권은 저울추이니 써한 바 물건의 경중을 달아 중을 취함이라. 중을 잡고도 저울질함이 없으면 일정한 중에 붙어 변화를 알지 못하니 이 또한 하나를 잡은 것일 뿐이니라. 정자 가라사대 중이라는 글자는 가장 알기가 어려우니 모름지기 묵묵히 알아 마음으로 통함이니라. 또 시험 삼아 말한다면 한 대청인즉 중앙으로 가운데가 되고, 한 집인즉 대청이 가운데가 아니라 당이 가운데이며, 한 나라인즉 당이 가운데가 아니라 나라의 가운데가 가운데가 되니 이러한 유를 미루어보면 가히 볼 수 있느니라. 또 가라사대 중은 가히 잡지 못함이니 얻음을 안다면 사물마다 다 자연한 가운데가 있어 안배를 기다리지 아니하니 안배한다면 중이 아니니라.
所惡執一者, 爲其賊道也, 擧一而廢百也。
한쪽을 고집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그것이 도를 해치기 때문이며, 하나를 행하면 나머지는 모두 버려진다.
○賊 害也. 爲我 害仁, 兼愛 害義, 執中者 害於時中, 皆擧一而廢百者也.
○此章 言道之所貴者中, 中之所貴者權. 楊氏曰, 禹稷三過其門而不入, 苟不當其可, 則與墨子無異, 顔回在陋巷, 不改其樂, 苟不當其可, 則與楊氏無異. 子莫 執爲我兼愛之中而無權, 鄕鄰有鬪而不知閉戶, 同室有鬪而不知救之, 是亦猶執一耳. 故 孟子以爲賊道. 禹, 稷, 顔回, 易地則皆然, 以其有權也, 不然則是亦楊墨而已矣.
○적은 해함이라. 나를 위함은 인을 해함이오, 겸애는 의를 해함이오, 중을 잡는다는 것은 때로 중함을 해함이니 다 하나를 들어서 백을 폐하는 것이라.
○이 장은 도의 귀한 바가 중이오, 중의 귀한 바는 저울질임을 말씀함이라. 양씨 가로대 우와 직이 세 번 그 문을 지나면서도 들어가지 아니하시니 진실로 그 옳음에 맞지 아니한다면 묵자와 더불어 다름이 없음이오, 안자가 누추한 골목에 있으며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아니하시니 진실로 그 옳음에 맞지 아니하다면 양씨와 더불어 다름이 없음이라. 자막은 위아와 겸애의 중을 잡고 저울질함이 없으니 향리와 이웃에 싸움이 있어도 문 닫음을 아지 못하고, 한 방안에 싸움이 있어도 구할 줄을 모르리니 이 역시 하나를 잡음과 같음이라. 그러므로 맹자가 써 도를 해침을 위한다 하시니라. 우와 직과 안회가 처지를 바꾸면 다 그러함은 써 그 저울질함이 있음이니 그러하지 아니하면 이 또한 양묵일 뿐이니라.
第27章
孟子曰, 「饑者甘食, 渴者甘飮, 是未得飮食之正也。饑渴害之也, 豈惟口腹有饑渴之害? 人心亦皆有害。人能無以饑渴之害爲心害, 則不及人不爲憂矣。」
맹자가 말했다.
"배고픈 자는 음식을 달게 여기며, 목마른 자는 마시는 것을 달게 여기는데, 이것으로는 음식의 바른 맛을 알 수 없다. 배고픔과 갈증이 그것을 해치기 때문인데 어찌 입과 배에만 배고픔과 갈증의 해로움이 있겠는가! 사람의 마음에도 또한 해로움이 있다.
사람이 배고픔과 갈증의 해로움이 마음의 해로움이 된다고 여기지 않을 수 있다면 남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口腹 爲饑渴所害故, 於飮食不暇擇, 而失其正味, 人心 爲貧賤所害故, 於富貴 不暇擇而失其正理.
○입과 배는 기갈에 해로운 바가 되는 고로 마시고 먹음에 가릴 겨를이 없어 그 바른 맛을 잃고, 사람 마음은 귀천에 해로운 바가 되는 고로 부귀에 가릴 겨를이 없어 그 바른 이치를 잃느니라.
人能無以饑渴之害爲心害, 則不及人不爲憂矣。
사람이 배고픔과 갈증의 해로움이 마음의 해로움이 된다고 여기지 않을 수 있다면 남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人能不以貧賤之故而動其心, 則過人遠矣.
○사람이 능히 빈천의 이유로써 그 마음을 움직이지 아니한다면 남을 넘음이 멀어지니라(남보다 월등 뛰어나니라).
第28章
孟子曰, 「柳下惠不以三公易其介。」
맹자가 말했다. "유하혜는 삼공의 벼슬로도 그 절개를 바꾸지 않았다."
○介 有分辨之意. 柳下惠 進不隱賢, 必以其道遺佚不怨, 阨窮不憫, 直道事人, 至於三黜 是其介也.
○此章 言柳下惠和而不流, 與孔子論夷齊不念舊惡, 意正相類, 皆聖賢 微顯闡幽之意也.
○개는 분변의 뜻이 있음이라. 유하혜는 (벼슬길에) 나아가서는 어짊을 숨기지 않아 반드시 그 도로써 하며, 버림을 받고도 원망하지 아니하고, 곤궁함을 당하여도 근심하지 아니하며, 도를 곧게 하여 사람(인군)을 섬겨 세 번 내침에 이르니, 이것이 그 절개이니라. ○이 장은 유하혜가 화하면서도 (곁으로) 흐르지 아니했음을 말씀하심이니, 더불어 공자가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논하면서 ‘구악을 생각하지 않았다’라는 것(『논어』公冶長 제22장)과 뜻이 정히 서로 비슷하니 모든 성현이, 드러난 것을 미미하게 하고 그윽한 것을 밝힌 뜻이니라.
遺佚 : 유능한 사람이 인재로 뽑히지 않아 세상에 나타나지 않음. 또는 그 사람. 사물이 흩어져 없어짐. 또는 그 사물.
[해설]
유하혜에 대해 주자가 ‘和而不流’하다고 한 표현은 실은 『중용』 제10장에서 자로의 ‘强’에 대한 물음에 공자가 “故 君子和而不流, 强哉矯, 中立而不倚, 强哉矯.”라며 답변한 내용이다. 화하되 의리가 아니고 예가 아닌 곳에는 절대로 흐르지 말아야 하니 ‘和而不流’ 곧 중용을 지킨다는 것은 참으로 강한 것이라는 말씀이다.
‘微顯闡幽’는 『주역』계사하전 제6장에서 역에 관한 공자의 말씀으로 “夫易 彰往而察來, (而)微顯而闡幽, (開而)當名, 辨物, 正言, 斷辭, 則備矣.(무릇 역은 간 것을 밝혀서 오는 것을 살피며, 드러나 있는 것을 미미하게 하고 그윽한 것을 밝히며, 이름을 마땅하게 하며 물건을 분별하며 말을 바로 하며 말을 판단하니 곧 갖추어짐이라)”라는 내용에 나온다.
무릇 주역이라는 것은 지나간 것을 다 밝혀놓고 미래에 닥칠 일들을 살펴놓은 것이다(夫易 彰往而察來). 과거가 있어야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으므로 지난 과거에는 이렇게 지냈고 앞으로 오는 미래사는 이럴 것이다 하고 미리 살핀 것이다. 미래를 관찰하고 과거를 또 밝혀놓아 이렇게 과거와 미래를 분명히 해놓은 주역은 또 드러난 현상 속에 숨어 있는 은미한 이치를 살피고, 보이지 않는 심오한 이치를 밖으로 밝혀놓았다(微顯而闡幽). 微顯은 이미 세상에 드러나 있는 것의 근원을 알아내는 것이다. 顯을 微하는 것으로, 顯은 드러난 것이고, 微는 드러나기 전을 아는 것이다. 闡幽는 깊이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놓는 것이다. 이렇게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데까지 밝혀놓고(微顯),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도록 밝혀놓은 것(闡幽)이 바로 주역이자, 성인의 역할이다.
주역은 또한 제각기 이름을 마땅하게 다 붙여 놓았다(當名). 아버지, 아들, 형제, 조손, 부모 형제, 자매, 인군, 국사, 내직신하, 외직신하, 선비, 백성 등등 모두 합당하게 이름을 붙여놓았다. 그리고 乾은 말이 되고, 兌는 양이 되고, 離는 꿩이 되고, 震은 용이 되고, 巽은 닭이 되고, 坎은 돼지가 되고, 艮은 개가 되고, 坤은 소가 된다. 또한 팔괘 하나하나가 부모의 자식의 관계로도 분별해놓았다(辨物). 곧 當名은 괘효에 각기 이름을 합당하게 붙여놓았다는 말이고, 辨物은 괘효를 보고 분별해놓았다는 것이다.
주역은 또 말을 바로 했다(正言). 점차적으로 미현, 천유, 당명, 변물로 해놓고서 말을 붙이는데 바른 말로 중정하게 표현했다. 하늘괘를 元亨利貞이라고 정의했다는 것이 다 ‘正言’이다. 모든 말을 이치에 맞게 도덕적으로 규범에 맞고 바르게 해놓았다. 이렇게 말을 바로해놓고 그 말을 바르게 판단했는데(斷辭), 이것이 바로 점이다. 正言은 더덕적으로 이치에 맞게 풀이한 것이고, 斷辭는 점으로 풀이한 것이다. 길하다, 흉하다, 인색하다, 뉘우친다 등이 단사이다.
이렇게 모두 갖추어놓은 것이 바로 주역이다(則備矣). 말도 바르게 해놓고, 길흉도 딱딱 끊어놓았고, 보이지 않는 건 보이게 하고, 보이는 건 보이지 않는 것까지 밝혔고, 이름까지 합당하게 붙여놓았으니 모든 것이 다 주역 속에 갖춰져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것을 아는 것이 성인인 것이다.
第29章
孟子曰, 「有爲者辟若掘井, 掘井九軔而不及泉, 猶爲棄井也。」
맹자가 말했다.
'뜻한 바를 행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우물을 파는 것과 같은데, 우물을 아홉 길이나 파고서도 샘물에 이르지 못하면 우물을 버리는 것과 같다.
掘 : 팔 굴/뚫을 궐. 파다. 파냄. 캐다. 움푹 패다. 우뚝 솟은 모양. 다하다. 끝에 이름. 벗겨지다. 털이 빠짐. 뚫다. 구멍을 뚫음.
軔 : 바퀴굄목 인, 바퀴굄목. 멈추다. 정지시킴. 단단하다. 견고함. 게으르다. 게으름피움. 길(8척) 인, 仞과 통함.
○八尺曰仞, 言鑿井雖深, 然 未及泉而止, 猶爲自棄其井也.
○呂侍講曰, 仁不如堯, 孝不如舜, 學不如孔子, 終未入於聖人之域, 終未至於天道, 未免爲半塗而廢, 自棄前功也.
○팔척을 가로대 길이라. 우물을 팜에 비록 깊으나 그러나 샘물에 이르지 못하고 그치면 오히려 그 우물을 스스로 버리게 됨이라. ○여시강(이름은 希哲, 자는 原明. 南宋 河南人)이 가로대 어짊이 요임금 같지 못하고, 효가 순임금 같지 못하고, 배움이 공자 같지 못하면 끝내는 성인의 영역에 들어가지 못하고, 끝내는 하늘의 도에 미치지 못하니, 중도에서 그만 두어 스스로 앞의 공을 버리게 됨을 면치 못함이라.
第30章
孟子曰, 「堯舜性之也, 湯武身之也, 五覇假之也。久假而不歸, 惡知其非有也。」
맹자가 말했다.
"요임금과 순임금은 본성대로 하였으며, 탕왕, 무왕은 몸으로 실천하였으며, 춘추시대의 오패는 명분을 빌려서 행하였다. 오랫동안 빌려 쓰면서 돌려주지 않았으니, 자신의 소유가 아닌 것을 어찌 알겠는가."
○堯舜 天性渾全, 不假修習, 湯武修身體道, 以復其性. 五覇則假借仁義之名, 以求濟其貪欲之私耳.
○요순은 천성과 완전히 합하여 닦고 익힘을 빌리지 아니하고, 탕무는 수신하여 도를 체화하여 써 그 성을 회복하고, 오패는 곧 인의의 이름을 임시로 빌려서 써 그 탐욕의 사사로움을 이루기를 구했을 뿐이니라.
久假而不歸, 惡知其非有也。
오랫동안 빌려 쓰면서 돌려주지 않았으니, 자신의 소유가 아닌 것을 어찌 알겠는가.
○歸 還也. 有 實有. 言竊其名以終身, 而不自知其非眞有. 或曰, 蓋嘽世人莫覺其僞者, 亦通. 舊說 久假不歸, 卽爲眞有, 則誤矣.
○尹氏曰, 性之者 與道一也, 身之者 履之也, 及其成功, 則一也. 五覇則假之而已, 是以 功烈 如彼其卑也.
嘽 : 헐떡일 탄/느릴 천. 헐떡이다. 숨이 차 헐떡거림. 왕성하다. 많다. 기뻐하다. 느리다. 유유함. 두렵다.
○귀는 돌아옴이라. 유는 실제 있음이라. 그 이름을 훔쳐서 써 종신토록 그 진실로 있음이 아님을 스스로 아지 못함이라. 혹자가 가로대 대개 세상 사람들이 그 거짓된 것을 깨닫지 못함을 탄식한 것이라 하니 또한 통함이라. 옛 말에 오래 빌리고 돌아가지 아니하면 곧 참으로 있게 된다 하니 그릇됨이라.
○윤씨 가로대 성하는 것은 도와 더불어 하나요, 몸하는 것은 이행함이니 그 성공에 이르러서는 하나이라. 오패인즉 빌렸을 뿐이니 이로써 공의 맹렬함이 저같이 그 낮음이니라.
'四書 > 孟子' 카테고리의 다른 글
盡心 <上> 第38章 ~ 第40章 (0) | 2020.05.07 |
---|---|
盡心 <上> 第31章 ~ 第37章 (0) | 2020.05.07 |
盡心 <上> 第11章 ~ 第20章 (0) | 2020.05.07 |
盡心 <上> 第 1章 ~ 第10章 (0) | 2020.05.07 |
盡心 <上> 本文 (0) | 2020.0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