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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歷史와文學/列女傳(劉向)

母儀傳/衛姑定姜, 齊女傅母

by 柳川 2020. 6. 23.

衛姑定姜者, 衛定公之夫人, 公子之母也。公子旣娶而死, 其婦無子, 畢三年之喪, 定姜歸其婦。自送之至於野, 恩愛哀思, 悲心感慟, 立而望之, 揮泣垂涕。乃賦詩曰, 「燕燕于飛, 差池其羽。之子于歸, 遠送于野。瞻望不及, 泣涕如雨。」 送去歸泣而望之, 又作詩曰, 「先君之思, 以畜寡人。」

 

 

國風/邶風/燕燕

 

燕燕于飛,差池其羽。                   제비들이 나네, 이리저리.

之子于歸,遠送于野,                   그 사람 돌아간다기에  멀리 들로 나가 전송하였네.

瞻望弗及,泣涕如雨。                   멀어져 보이지 않을 때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네.

 

<中略>

 

仲氏任只,其心塞淵。                    仲氏(戴嬀의 字) 믿음성이 있고  마음이 참으로 깊어

終溫且惠,淑愼其身。                    온화하며 마음씨도 좋아 몸가짐이 맑고 신중하더니 

先君之思,以勖寡人。                    선군(莊公)의 뜻을 잘 헤아려  나를 힘써 살폈네.

 

 

위(衛)나라의 시어머니 정강(定姜)은 위나라 정공(定公)의 부인으로 공자의 모친이다. 공자가 이미 혼인했으나 일찍 죽었고 그 홀로된 며느리는 자식이 없어 삼년상을 마치자 정강은 며느리를 친정으로 돌려보냈다. 스스로 그녀를 배웅하러 교외까지 나갔는데 며느리를 사랑하는 마음에 슬픔을 가눌 길이 없어 서서 며느리를 바라보면서 눈물을 뿌리며 울었다.

이에 시 한 수를 지었다.

"제비들이 나네, 이리저리. 그 사람 돌아간다기에  멀리 들로 나가 전송하였네.  멀어져 보이지 않을 때  눈물이 비오듯 흘렀네.(國風/邶風/燕燕)"

사라져가는 며느리를 울면서 바라보다가 또 시 한 수를 지었다.

"선군(莊公)의 뜻을 잘 헤아려  나를 힘써 살폈네.(國風/邶風/燕燕)"

 

 

 

 

君子謂, 「定姜爲慈姑過而之厚。」 定公惡孫林父, 孫林父奔晉, 晉侯使郤犨爲請還, 定公欲辭, 定姜曰, 「不可。是先君宗卿之嗣也。大國又以爲請, 而弗許將亡, 雖惡之, 不猶愈於亡乎? 君其忍之, 夫安民而宥宗卿, 不亦可乎?」 定公遂復之。 

君子謂, 「定姜能遠患難。」

詩曰, 「其儀不忒, 正是四國。」 此之謂也。

 

犨 : 흰소 주. 흰소. 소 숨쉬는 소리, 소가 헐떡이는 소리. 소가 울다.

 

 

國風/曹風/鳲鳩

 

鳲鳩在桑,其子在棘。               뻐꾸기 뽕나무에 앉았는데, 새끼는 가시나무에 앉았네.

淑人君子,其儀不忒;               어진 군자, 그 위의가 어긋나지 않네. 

其儀不忒,正是四國。               위의가 어긋나지 않으니, 사방(四方)을 바르게 하리라.

 

 

군자는, "정강은 자애로웠으나 그 후함이 지나쳤다."고 하였다.

정공이 대부인 손림보(孫林父)를 미워하자 손림보가  진(晉)나라로 도주했는데 진나라 제후(諸侯)가 극주(郤犨)를 사신으로 보내 손림보의 귀국을 청하였다. 

정공이 거절하려 하자, 정강이 말했다.

"안됩니다. 이 사람은 선조(先祖)때부터의 중신의 후예입니다. 큰 나라(晉)에서 또 귀국하도록 청하는 것이니 허락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 것이니 싫어하더라도 망하는 것보다 오히려 낫지 않겠습니까? 군주께서는 참으시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시고 중신을 용서하는 것 또한 좋지 않겠습니까?"

정공은 마침내 손임보의 귀국을 허락(신분을 회복)하였다.

 

군자는, "정강은 능히 환난을 멀리하였다."고 하였다.

시에, "위의가 어긋나지 않으니, 사방(四方)을 바르게 하리라.(國風/曹風/鳲鳩)라 함은 이를 말한 것이다.

 

 

 

定公卒, 立敬姒之子衎爲君, 是爲獻公。獻公居喪而慢, 定姜旣哭而息, 見獻公之不哀也, 不內食飮, 嘆曰, 「是將敗衛國, 必先害善人, 天禍衛國也! 夫吾不獲鱄也, 使主社稷。」

大夫聞之皆懼, 孫文子自是不敢舍其重器於衛。鱄者獻公弟子鮮也, 賢而定姜欲立之而不得。後獻公暴虐, 慢侮定姜, 卒見逐走, 出亡至境, 使祝宗告亡, 且告無罪於廟。

 

鱄 : 전어 전.

 

 

 

정공(定公)이 죽자 경사(敬姒)의 아들  간(衎)을 군주로 세우니 이 자가 헌공(獻公)이다. 헌공은 상중에도 절차에 태만하고

정강이 곡을 마치고 휴식하는 동안 헌공이 슬퍼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지 않자 음식을 넘기지 못하고 탄식했다.

"이 자는 위나라를 패망시킬 것이다. 반드시 좋은 인재를 먼저 해칠 것이니 하늘이 위나라에 재앙을 내리리라! 내가 전(鱄)으로 하여금 사직을 주관하도록 하였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대부들이 그 말을 듣고 모두 두려워하였고 손문자(孫文子)는 이로부터 감히 위나라에 중요한 물건을 두지 못했다. 전(鱄)

은 헌공의 동생으로 자선(子鮮)인데 현명하여 정강이 군주로 옹립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후에 헌공이 사나워져 정강을 함부로 대하다가 마침내 축출을 당했는데 도망길에 국경에 이르러 제관(祭官)으로 하여금 종묘에 자신의 망명과 자신의 무죄를 고하게 하였다. 

 

 

 

定姜曰, 「不可。若令無神, 不可誣, 有罪, 若何告無罪也? 且公之行, 舍大臣而與小臣謀, 一罪也, 先君有衛卿以爲師保, 而蔑之, 二罪也, 余以巾櫛事先君, 而暴妾使余, 三罪也, 告亡而已, 無告無罪。其後賴鱄力, 獻公復得反國。

君子謂, 「定姜能以辭敎。」

詩云, 「我言惟服。」 此之謂也。

 

 

大雅/生民之什/板

 

我雖異事,及爾同寮。               내 비록 하는 일이 다르지만 너와 더불어 동료가 되리라.

我即爾謀,聽我囂囂。               내가 너에게 나아가 계책을 세우나 내 말을 건성으로 듣는구나.

我言維服,勿以爲笑。               내가 말하는 것은 오로지 해야할 일이니 웃어 넘기지 말라.

先民有言:詢于芻蕘。               선현이 말하기를 나뭇꾼에게도 물으라 하셨느니라.

 

 

정강은, "불가하다. 신이 없다 해도 속일 수가 없는데, 죄가 있는데도 무엇이라고 고하여 무죄라 할 것인가? 또 헌공의 행위가 대신을 버리고 소인배와 더불어 일을 꾀하였으니 첫째 죄요, 선군(先君)이 위나라의 공경들을 스승으로 삼았는데 그들을 멸시한 것이 두번째 죄이며, 내가 선군을 모셨음에도 나를 몸종과 같이 사납게 대하고 부린 것이 셋째 죄이니 도망친 것은 고하고 무죄라는 것은 고할 것 없다. "

그 후에 전(鱄)이 힘쓴 덕택에 헌공은 다시 귀국할 수 있었다.

군자는, "정강은 능히 말로써 가르쳤다."고 하였다.

시에, "내가 말하는 것은 오로지 해야할 일이다.(大雅/生民之什/板)"라 함은 이를 말하는 것이다.

 

 

 

鄭皇耳率師侵衛。孫文子卜追之, 獻兆於定姜曰, 「兆如山林, 有夫出征而喪其雄。」 定姜曰, 「征者喪雄, 禦寇之利也, 大夫圖之。」 衛人追之, 獲皇耳於犬丘。

君子謂, 「定姜達於事情。」  

詩云, 「左之左之, 君子宜之。」 此之謂也。

頌曰, 「衛姑定姜, 送婦作詩, 恩愛慈惠, 泣而望之, 數諫獻公, 得其罪尤, 聰明遠識, 麗於文辭。」

 

 

小雅/北山之什/裳裳者華

 

左之左之,君子宜之。                왼쪽으로 인도 하면 왼쪽으로 가니 군자가 아름답도다.

右之右之,君子有之。                오른 쪽으로 인도하면 오른 쪽으로 가니 군자가 여유롭도다.

維其有之,是以似之。                군자가 여유로우니 이로써 군자답도다.

 

 

정(鄭)나라 황이(皇耳)가 군대를 거느리고 위나라를 침략(侵掠)하였다. 손문자(孫文子)가 이들을 물리치려고 점을 쳐, 점괘(占卦)를 정강에게 바쳤다. "점괘가 산림과 같아서 출정하면 장수를 잃을 것입니다."

정강이, "치는 자가 장수를 잃으니 적을 막는자는 이로울 것이오. 대부는 막도록 하시오."라 말했다.

위나라 사람들이 정나라 군대를 물리치고 견구(犬丘)에서 황이를 사로잡았다.

 

군자는, "정강은 사정에 통달했다."고 하였다.

시에, "왼쪽으로 인도 하면 왼쪽으로 가니 군자가 아름답도다.(小雅/北山之什/裳裳者華)라함은이를말한것이다.

송에, "위나라의 시어머니 정강은 며느리를 보내면서 시를 지었는데 사랑과 자애로 눈물을 흘리며 바라보았고, 헌공을 자주 간하였으나 죄가 더욱 많아졌는데 총명하고 앞을 내다보는 식견이 있었으며 글과 말이 훌륭했다."고 하였다.

 

 

☞ 參考

정강(定姜)에 대하여는 作家인 劉向의 착오가 있는 것 같다. 사기(史記), 시경(詩經/燕燕)에는 모두 장공(莊公)의 부인 장강(莊姜)으로 기록되어 있다.  위(衛) 정공(定公)은 시대적으로 훨씬 후의 군주이다.

사기(史記. 卷三七. 衛康叔世家)를 보면 「莊公五年, 取齊女為夫人, 好而無子. 又取陳女為夫人, 生子, 蚤死. 陳女女弟亦幸於莊公, 而生子完(14). 完母死, 莊公令夫人齊女子之(15), 立為太子。」라 하고 그 註(14)에  「女弟, 戴嬀也. 子桓公完為州吁所殺, 戴嬀帰陳, 詩燕燕于飛之篇是.」, 註(15)에謂養之為子也. 齊女即莊姜也. 詩碩人篇美之是也.」로 기록되어 있고,

시경 연연(燕燕)편의 주(註)에 「莊姜 無子, 以陳女戴嬀之子完 爲己子, 莊公 卒,  卽位, 嬖人之子州吁 弑之. 戴嬀 大歸于陳而莊姜 送之, 作此詩也.」라 기록된 것을 보면 작가의 착오가 분명하다고 본다.

 

다음 장의 제녀부모(齊女傅母)는 장강(莊姜)의 부모(傅母)에 대한 글인데 장강이 자식이 없어 장공의 애첩 대규(戴嬀)의 아들인 환공(桓公)을 아들로 삼았고, 장공의 총애를 받던 미천한 신분의 여인이 낳은 주우(州吁)가 등장하는 등, 그 내용이 상당부분 부합하여 장강에 관한 내용임에 틀림없다.

장공이 죽은 후, 환공(16년), 주우(?), 선공(宣公 : 19년), 혜공(3년), 검모(黔牟: 8년), 혜공(복위후 20년), 의공(9년), 대공 · 문공(戴公 · 文公: 25년), 성공(成公 : 35년), 목공(穆公 :12년), 정공(定公 : 12년), 헌공(獻公[姬衎] : 18년), 상공(殤公 : 12년), 헌공(獻公복위 : 3년)등의 순으로 이어졌는데 헌공(獻公[姬衎])및 孫林父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장강(莊姜)을 정강(定姜)으로 잘못 기재하였다는 것도 이해가 어렵고 시기적으로나 내용으로 보아 정공(定公)의 부인이 맞는 것 같은데 모두(冒頭)의 구절은 작가의 착오로 인한 것 같다.

 

 

 

 

齊女傅母

 

傅母者齊女之傅母也。女爲衛莊公夫人, 號曰莊姜。姜交好始往, 操行衰惰, 有冶容之行, 淫泆之心。傅母見其婦道不正, 諭之云, 「子之家世世尊榮, 當爲民法則, 子之質聰達於事, 當爲人表式, 儀貌壯麗, 不可不自脩整, 衣錦絅裳, 飾在輿馬, 是不貴德也。」 乃作詩曰, 「碩人其頎, 衣錦絅衣。齊侯之子, 衛侯之妻, 東宮之妹, 邢侯之姨, 譚公維私。」 砥厲女之心以高節, 以爲人君之子弟, 爲國君之夫人, 尤不可有邪僻之行焉。女遂感而自脩。

 

 

부모(傅母)는 제(齊)나라 제후(諸侯)의 딸의 여자 스승이다.  제나라 제후의 딸은 위(衛)나라 장공(莊公)의 부인이 되어 장강(莊姜)이라 불리었다. 장강이 처음 위나라에 출가하여 갔을 때 사이좋게 지냈는데 품행이 방정치 못했고 마음도 음탕하였다. 부모는 그녀가 여인의 도에 바르지 못한 것을 보고 충고했다.

"그대의 집안은 대대손손 존귀하고 영화로우니 마땅히 백성의 법도가 되어야 하고, 그대의 자질이 총명하고 매사에 통달하였으니 마땅히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데, 용모를 아름답도록 스스로 매만지지 않으면 안되며, 비단옷을 입고 수레와 말을 장식하니 이것은 덕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이에 시를 지었다. "훌륭하신 님 풍채가 헌걸차고 비단옷에 홑옷을 걸치셨네. 제나라 제후의 자식이요, 위나라 제후의 부인이며,  (齊)동궁의 누이이고  형나라 제후의 이모요 담나라 제후가 형부로다.(國風/衛風/碩人)"

여인의 마음을 어루만져 절의(節儀)를 높이니 인군의 자녀와 형제이며 나라의 군주의 부인이 되어 더욱 그릇된 행실을 할 수 없었다.  여인은 감화를 받아 스스로 조신하였다.

 

 

 

君子善傅母之防未然也。莊姜者東宮得臣之妹也, 無子姆戴嬀之子桓公。公子州吁嬖人之子也, 有寵驕而好兵, 莊公弗禁, 後州吁果殺桓公。

詩曰, 「毋敎猱升木。」 此之謂也。

頌曰, 「齊女傅母, 防女未然, 稱列先祖, 莫不尊榮, 作詩明指, 使無辱先, 莊姜姆妹, 卒能脩身。」

 

 

小雅/桑扈之什/角弓

 

毋敎猱升木,如涂涂附。             원숭이에 나무타기 가르치지 말라, 진흙에 진흙을 바름과 같도다.

君子有徽猷,小人與屬。             군자에게 훌륭한 계책이 있으면 소인이 따를 것이로다.

 

 

군자는 부모가 사전에 방지한 것을 좋게 여겼다. 장강은 제나라 동궁 득신(得臣)의 누이이며, 아들이 없어 대규(戴嬀)의 아들 환공(桓公)을 아들로 삼았다. 공자 주우(州吁)는 장공의 총애를 받던 여인의 아들로 장공의 총애를 받자 교만하고 병기(兵器)를 좋아하였는데 장공이 그러한 행동을 금하지 않아 훗날 주우는 결국 환공을 시해하였다.

시에, "원숭이에게 나무타기를 가르치지 말라.(小雅/桑扈之什/角弓)"고 한 것은 이를 말하는 것이다.

송에, "제나라 여인의 부모는 여인의 어긋난 행실을 미연에 방지하였는데 선조를 열거하며 기리고 고귀하고 영화롭지 않음이 없음을 들어 시를 지어 여인의 법도를 밝히고 지적하여 사전에 욕됨을 막았으며 장강의 어머니와 누이가 되어 마침내 장강이 능히 행실을 닦게 되었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