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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歷史와文學/列國志

第二七回. 驪姬巧計殺申生, 獻公臨終囑荀息.

by 柳川 2021. 3. 22.

第二七回. 驪姬巧計殺申生, 獻公臨終囑荀息.

 

 

話說晉獻公旣並虞虢二國,群臣皆賀。惟驪姬心中不樂。他本意欲遣世子申生伐虢,卻被里克代行,又一擧成功,一時間無題目可做。乃復與優施相儀,言:「里克乃申生之黨,功高位重,我無以敵之,奈何?」 優施曰:「荀息以一璧馬滅虞虢二國,其智在里克之上,其功亦不在里克之下。若求荀息爲奚齊卓子之傅,則可以敵里克有餘矣。」 驪姬請於獻公,遂使荀息傅奚齊卓子。驪姬又謂優施曰:「荀息已入我黨矣。里克在朝,必破我謀,何計可以去之?克去而申生乃可圖也。」 優施曰:「里克爲人,外强而中多顧慮。誠以利害動之,彼必持兩端,然後可收而爲我用。克好飲,夫人能爲我具特羊之饗,我因侍飲而以言探之。其入,則夫人之福也;即不入,我優人亦聊與爲戲,何罪焉?」 驪姬曰:「善。」 乃代爲優施治飮具。

 

持兩端 : 두마음을 품다. 양다리를 걸치다. 

 

 

 

당진의 헌공(獻公)이 이미 우(虞)나라와 괵(虢)나라의 두 나라를 병합하자 신하들이 모두 경하했다.  그러나 오직 여희의 마음은 즐겁지 않았다.  그녀의 본래 의도는 세자 신생을 보내 괵나라를 정벌하게 하는 것이었으나 오히려 이극(里克)이 세자를 대신하였고 또 한 번의 거사로 로 공을 세워버려 한 순간에 어찌할 바가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다시 배우 시(施)와 상의했다.

"이극은 태자 신생의 무리인데 공이 크고 지위가 높아져 내가 그를 대적할 수 없는데 어찌하면 좋겠소?"

배우 시가 말했다.

"순식은 수극지벽과 굴산지마를 쓰는 계책을 내어 우(虞)나라와 괵(虢)의 두 나라를 멸망시켰으니 그 지혜가 이극의 위에 있으며 그의 공도 이극보다 못하지 않습니다.  순식에게 해제(奚齊)와 탁자(卓子)의 스승이 되게 한다면 이극을 넉넉히 대적할 것입니다."

이에 여희가 헌공에게 청하여 마침내 순식이 해제와 탁자의 스승이 되게 했다. 

여희가 또 시에게 말했다. "순식은 이제 우리 편이 되었다.  그러나 이극이 조정에 있으니 무슨 계책을 써야 그를 쫒아낼 수 있겠는가? 이극을 제거해야  신생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가 말했다. "이극은 그 사람됨이 겉으로는 강하지만 마음은 매우 세심합니다. 진실로 이해를 따져 그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면 그는 반드시 양다리를 걸치게 될 것이니 그런 다음에는 그를 거두어 우리편으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극은 술을 좋아하니 부인께서는 저에게 특별히 양고기요리를 준비해 주십시오. 제가 가지고 가서 술을 권하며 그를 탐색해 보겠습니다.  그가 우리편으로 들어온다면 부인의 복이며, 들어오지 않는다면 저는 배우이므로 애오라지 그와 농담한 것이니 무슨 죄가 되겠습니까?"

여희가 "좋다." 하고는 시가 대신하여 음식을 준비하게 했다. 

 

 

 

 

優施預請於里克曰:「大夫驅馳虞虢間,勞苦甚。施有一杯之獻,願取閒邀大夫片刻之歡,何如?」 里克許之。乃攜酒至克家。克與內子孟,皆西坐爲客。施再拜進觴,因侍飮於側,調笑甚洽。酒至半酣,施起舞爲壽,因謂孟曰:「主啗我。我有新歌,爲主歌之。」 孟酌兕觥以賜施,啗以羊脾。問曰:「新歌何名?」 施對曰:「名《暇豫》,大夫得此事君,可保富貴也。」 乃頓嗓而歌。

歌曰:

暇豫之吾吾兮,不如鳥烏。

眾皆集於菀兮,爾獨於枯。

菀何榮且茂兮?枯招斧柯!

斧柯行及兮,奈爾枯何!

 

片刻 : 아주 짧은 시간. 잠깐, 잠시.     調笑 : 놀리다. 희롱하다. 조소하다. 농담하다.    啗 : 먹을 담. 먹다. 게걸스럽게 먹음. 먹이다. 속이다.

嗓 : 목구멍 상. 목구멍.                 吾吾 : 용감히 다가서서 서로 친하게 지내지 못하는 모양이다. 곧 머뭇거리며 배회하는 모양이다.

菀 : 자완 완/무성할 울. 자완(紫菀). 엉거시과의 여러해살이풀. 동산.   [울]무성하다, 우거짐. 울적하다. 우울해짐. 쌓다. 

 

 

 

배우 시가 미리 이극에게 청했다.

"대부께서 우나라와 괵나라 사이를 질주하시면서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제가 술 한 잔을 올리고 대부께서 한가롭게 잠시나마 즐거움을 드리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이극이 허락하자 술을 가지고 이극의 집으로 갔다.  이극과 부인 맹씨(孟氏)는 객을 맞는 예에 따라 서쪽에 앉았다. 시가 두번 절하고 술잔을 바치고는 곁에서 시중을 들며 우스갯 소리로 분위기를 돋우었다. 

술이 얼근해지자  시가 일어나 춤을 추며 장수를 축원하고 맹씨에게 말했다. 

"주인께서는 저에게도 한잔 주십시오. 저에게 새로운 노래가 있는데 주인을 위해 부르겠습니다."

맹씨가 코뿔소의 뿔로 된 술잔에 술을 따라 시에게 잔을 내리고는 양요리의 다리를 안주로 주었다. 

"새로운 노래의 이름이 무엇인가?"

시가 대답했다. "이름을 가예(暇豫)라 합니다. 대부께서 이 노래를 들으시고 군주를 섬기신다면 부귀를 보전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목청을 가다듬고 노래를 불렀다.

 

노래는 다음과 같았다.

잠깐 즐기고 있는 우리는 까마귀만도 못하구나. 

사람들이 모두 무성한 나무에 모였는데 그대 홀로 고목나무에 앉았네. 

무성하면 어찌 꽃피어 무성하지 않으리오? 고목은 도끼만 부르리라.

도끼가 이르면 네 고목나무는 어찌 될거나!

 

 

 

 

歌訖,里克笑曰:「何謂菀?何謂枯?」 施曰:「譬之於人,其母爲夫人,其子將爲君。本深枝茂,眾鳥依托,所謂菀也。若其母已死,其子又得謗,禍害將及。本搖葉落,鳥無所棲,斯爲枯矣。」 言罷,遂出門。里克心中怏怏,即命撤饌。起身逕入書房,獨步庭中,迴旋良久。是夕,不用晩餐,挑燈就寢,展轉牀褥,不能成寐。左思右想:「優施內外俱寵,出入宮禁,今日之歌,必非無謂而發。彼欲言未竟,俟天明當再叩之。」 捱至半夜,心中急不能忍,遂吩咐左右:「密喚優施到此問話。」 優施已心知其故,連忙衣冠整齊,跟著來人直達寢所。里克召優施坐於牀間,以手撫其膝,問曰:「適來『菀枯』之說,我已略喩,豈非謂曲沃乎?,汝必有所聞,可與我詳言,不可隱也。」 施對曰:「久欲告知,因大夫乃曲沃之傅,且未敢直言,恐見怪耳。」 里克曰:「使我預圖免禍之地,是汝愛我也,何怪之有?」 施乃俯首就枕畔低語曰:「君已許夫人,殺太子而立奚齊,有成謀矣。」

 

無謂 : 의미가 없다.  부당하다. 뜻이 없다.                             捱 : 막을 애. 막다. 늘어지다. 

 

 

 

노래를 마치자 이극이 웃으며 물었다. "무엇을 울(菀)이라 하고 무엇을 고(枯)라 하는가?"

시가 대답했다.

"사람에게 비유하자면  모친이 부인이면 그 아들이 군주가 될 것입니다.  뿌리가 깊고 가지가 무성하면 많은 새들이 날아와 의탁할 것이니 그것을 울(菀)이라 하며, 그 모친이 이미 죽었다면 그 아들은 비방을 받아 재앙이 닥칠 것입니다. 뿌리가 흔들려 잎이 지고나면 서식하는 새도 없을 것이니 이것은 고목(枯)이 될 것입니다."

말을 마치자 시는 문을 나섰다.  이극은 마음이 불쾌하여 즉시 명을 내려 상을 치우게 하였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자신의 거처로 가서는 홀로 뜰을 거닐며 한참동안 서성였다.  그날 저녁 식사도 하지 않고 등불의 심지를 돋우고는 침상에 올랐으나 전전반측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리저리 생각을 거듭했다. "배우인 시(施)는 안팎으로부터 모두 총애를 받아 궁안을 마음대로 다니는 자인데, 오늘 그가 부른 노래는 반드시 의미없이 부른 것이 아니다. 그가 말을 마치려고 한 것이 아니니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물어봐야겠다."

한밤중이 되었는데도 마음이 참을 수 없이 급해져 좌우에 분부를 내렸다. 

"은밀하게 배우 시를 이리 불러오라. 물어볼 말이 있다."

시는 이미 그 까닭을 알고 있기 때문에 황망히 의관을 정제하고 심부름 온 자를 따라 곧장 이극의 침소로 들어갔다.  이극은 배우 시를 불러 침상곁에 앉게 하고는 그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대가 와서 울(菀)과 고(枯)를 말한 것은 내가 이미 대충 짐작은 하고 있네만  곡옥의 세자에 관한 일이 아닌가?  그대가 반드시 들은바가 있을 것이니 나에게 자세히 이야기 해주게. 숨기는 것이 있어서는 안되네."

시가 대답했다. "오랫동안 알려드리려고 했습니다만 대부께서는 곡옥에 계신 태자의 스승이시라 감히 말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이상하게 여기실까 두렵습니다."

이극이 말했다. "내가 미리 화를 면하도록 해주는 해주는 일이며, 바로 그대가 나를 좋아해서 하는 일인데 어찌 괴이히 여기겠는가?"

시가 머리를 숙이며 침상 곁으로 바짝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군께서는 부인께 이미 허락하신 일로 태자를 죽이고 해제를 태자로 세우는 일인데 그 계책은 곧 이루어질 것입니다."

 

 

 

 

里克曰:「猶可止乎?」 施對曰:「君夫人之得君,子所知也。中大夫之得君,亦子所知也。夫人主乎內,中大夫主乎外,雖欲止,得乎?」 里克曰:「從君而殺太子,我不忍也。輔太子以抗君,我不及也。中立而兩無所爲,可以自脫否?」 施對曰:「可。」 施退,里克坐以待旦,取往日所書之簡視之,屈指恰是十年。嘆曰:「卜筮之理,何其神也!」 遂造大夫丕鄭父之家,屏去左右告之曰:「史蘇卜偃之言,驗於今矣!」 丕鄭父曰:「有聞乎?」 里克曰:「夜來優施告我曰:『君將殺太子而立奚齊也。』」 丕鄭父曰:「子何以復之?」 里克曰:「我告以中立。」 丕鄭父曰:「子之言,如見火而益之薪也。爲子計,宜陽爲不信,彼見子不信,必中忌而緩其謀。子乃多樹太子之黨,以固其位,然後乘間而進言,以奪君之志,成敗猶未有定。今子曰『中立』,則太子孤矣,禍可立而待也!」 里克頓足曰:「惜哉!不早與吾子商之!」 里克別去登車,詐墜於車下。次日遂稱傷足,不能赴朝。

 

史臣有詩云:

特羊具享優人舞,

斷送儲君一曲歌。

堪笑大臣無遠識,

卻將中立佐操戈。

 

中大夫 : 東關五와 梁五.  獻公有嬖幸大夫二人:曰梁五東關五,並與獻公察聽外事,挾寵弄權,晉人謂之 「二五」。<第20回 參照>

所書之簡 : 헌공이  太卜 郭偃에게 거북점을 치게 하여 얻은 점괘와  太史 蘇가 점을 쳐 얻은 효사를 적은 죽간을 말함. <本書 第20回>

 

 

 

이극이 물었다. "아직 막을 수 있지 많은가?"

시가 대답했다.

"군부인(君夫人)이 주군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것은 대부께서도 알고 계시는 일입니다.  중대부(中大夫)들도 주군의 신임을 받고 있음은 대부께서 알고 계시는 일입니다. 부인이 안에서 주장하고 중대부들이 밖에서 주장하시는데 그것을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이극이 말했다. "주군을 따라 태자를 죽이는 일은 내가 차마 하지 못하네. 또 태자를 도와 주군을 거스르는 것도 나는  하지 못한다.  중립을 지켜 양쪽에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되지 않겠는가?"

시가 "좋습니다." 하고 물러갔다.  

이극은 앉아서 아침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지난 날 썼던 죽간을 가져다 보며 손가락을 접으며 헤아려보니 꼭 10년이 되었다. 

이극이 탄식했다. "점괘의 이치가 어찌 이렇게 신묘한 것인가!"

이에 대부 비정보(丕鄭父)의 집에 가서 좌우를 물리치게 하고 말했다. "태사 소와 태복 곽언의 말이 지금 증험을 보이고 있습니다." 

비정보가 물었다. "들은 것이 있습니까?"

이극이 대답했다. "간밤에 배우 시가 나에게 와서 '주군께서 태자를 죽이고 해제를 태자로 세우려고 하신다.'고 했습니다."

비정보가 물었다. "대부께서는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이극이 대답했다. "나는 중립을 지킨다고 말했습니다."

비정보가 말했다.

"대부의 말씀은 불을 보면서 장작을 더 넣은 것과 같습니다.  대부를 위해 계책을 말씀드리면  마땅히 믿지 못하겠다는 뜻을 보였어야 했으며, 그쪽에서 대부께서 불신하시는 모습을 보게 되면 반드시 두려워하고 계책의 실행을 늦추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대부께서 태자를 지지하는 자들을 조정에 많이 심게 되면 태자의 지위가 견고해질 것이니 그런 후에 그 틈을 타서 주군의 뜻을 꺾는다면 성패는 아직 미정일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대부께서는 중립을 지킨다고 하셨으니 태자는 고립되셨으며 재앙을 기다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이극이 발을 구르며 말했다. "애석하구나! 그대와 일찍 상의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구나!"

이극이 비정보와 작별하고 수레를 타고 가다가 거짓으로 수레에서 떨어졌다. 다음날 발을 다쳤다고 핑계대고 조회에 나갈 수 없다고 하였다. 

사관이 시를 지었다. 

배우가 특별히 준비한 양요리를 대접하며 춤추다가,

노래 한 곡으로 태자의 목숨을 보내게 되었구나. 

대신은 긴 안목이 없어 웃음거리가 되었고,

중립을 지킨다는 것이 오히려 참극을 도왔도다. 

 

 

 

 

優施回復驪姬,驪姬大悅。乃夜謂獻公曰:「太子久居曲沃,君何不召之? 但言妾之思見太子。妾因以爲德於太子,冀免旦夕何如?」 獻公果如其言,以召申生。申生應呼而至,先見獻公,再拜問安,禮畢,入宮參見驪姬。驪姬設饗待之,言語甚歡。次日,申生入宮謝宴,驪姬又留飯。是夜,驪姬復向獻公垂淚言曰:「妾欲回太子之心,故召而禮之。不意太子無禮更甚。」 獻公曰:「何如?」 驪姬曰:「妾留太子午餐,索飮,半酣,戲謂妾曰:『我父老矣,若母何?』 妾怒而不應。太子又曰:『昔我祖老,而以我母姜氏,遺於我父。今我父老,必有所遺,非子而誰?』 欲前執妾手,妾拒之乃免。君若不信,妾試與太子同遊於囿,君從臺上觀之,必有睹焉。」 獻公曰:「諾。」 及明,驪姬召申生同遊於囿。驪姬預以蜜塗其發,蜂蝶紛紛,皆集其。姬曰:「太子盍爲我驅蜂蝶乎?」 申生從後以袖麾之。獻公望見,以爲眞有調戲之事矣。心中大怒,即欲執申生行誅。驪姬跪而告曰:「妾召之而殺之,是妾殺太子也。且宮中暖昧之事,外人未知,姑忍之。」 獻公乃使申生還曲沃,而使人陰求其罪。

 

發 : 髮                   蜂蝶 : 벌과 나비인데 문맥상 벌로만 해석한다.         暖昧 : 曖昧

 

 

 

배우 시가 여희에게 돌아가 복명하니 여희가 크게 기뻐하였다.

그리하여 밤이 되자 헌공에게 말했다.

"태자가 곡옥에 머문지 오래되었는데 주군께서는 어찌 그를 부르지 않습니까?  단지 첩이 태자를 보고 싶은 마음에서 말씀드리는 것일 뿐입니다. 첩은 태자에게 덕이 있다고 여기고 빠른 시일내 고생을 면하기를 바라는데 어떻습니까?"

헌공이 과연 그 말대로 신생을 불렀다. 신생은 부름을 받고 와서 먼저 헌공을 알현하였는데 재배하고 문안인사를 드리고 예를 마치자 궁으로 들어가 여희에게도 인사했다.  여희는 주연을 배설하고 그를 대접했는데 말투가 매우 다정했다. 

다음날 신생이 궁에 들어가 연회를 베풀어준데 대하여 감사를 드렸는데 여희는 또 그를 머무르게 하여 식사를 대접했다. 

그날 밤 여희는 다시 눈물을 흘리며 헌공에게 말했다.

"첩이 태자의 마음을 돌리려고 그를 불러 예로써 대했습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태자는 무례한 행동을 거듭했습니다."

헌공이 물었다. "무슨 일인가?"

여희가 말했다.

"첩이 태자를 머무르게 하여 점심을 대접했는데 술을 마시다가 취기가 오르자 첩을 희롱하며 말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연로하신데 어머니께서는 어떠십니까?' 첩이 노하여 응대를 하지 않았는데 태자가 또 말했습니다. '옛날 우리 할아버지가 연로하시어 우리 어머니 강씨를 우리 아버지가 물려 받았습니다. 지금 우리 아버지도 연로하시어 반드시 물려주게 될 것인데 아들이 아니면 누구겠습니까?' 그리고 첩의 손을 잡으려고 하는 것을 첩이 저항하여 치욕을 면했습니다. 주군께서 믿지 못하시겠으면 첩이 태자와 함께 원유(苑囿 : 궁안의 동산)를 거닐어 보겠습니다. 주군께서 누대 위에서 바라보신다면 반드시 태자의 무례한 행동을 보시게 될 것입니다."

헌공이 말했다. "그렇게 하겠노라."

날이 밝자 여희는 신생을 불러 함께 원유 안을 거닐었다. 여희는 미리 그녀의 머리털에 꿀을 발라서 벌들이 어지러이 날아 여희의 머리위로 날아들었다.  

그러자 여희가 말했다. "태자는 어찌 나에게서 벌을 쫒지 않으십니까?"

그러자 신생이 그녀의 뒤를 따라가며 소매를 휘둘러 벌을 쫒았다. 헌공이 멀리서 바라보니 신생이 여희를 희롱하는 일이 진실인 것으로 보였다. 크게 노하여 신생을 잡아다 죽이려고 하였다.

그러자 여희가 무릎을 꿇고 말했다.

"첩이 태자를 불렀는데 그를 죽이신다면 바로 첩이 태자를 죽이는 것입니다.  또 궁안에서 일어난 애매한 일은 외부인이 알지 말아야 하니 잠시 참으십시오."

그리하여 헌공은 신생에게 곡옥으로 돌아가게 하고는 사람을 시켜 은밀하게 그의 죄를 꾸짖었다. 

 

 

 

 

過數日,獻公出田於翟桓。驪姬與優施商議,使人謂太子曰:「君夢齊姜訴曰:『苦饑無食。』必速祭之。」 齊姜別有祠在曲沃。申生乃設祭,祭齊姜。使人送胙於獻公。獻公未歸,乃留胙於宮中。六日後,獻公回宮。驪姬以鴆入酒,以毒藥傅肉,而獻之曰:「妾夢齊姜苦饑不可忍,因君之出也,以告太子而使祭焉。今致胙於此,待君久矣。」 獻公取觶,欲嘗酒。驪姬跪而止之曰:「酒食自外來者,不可不試。」 獻公曰:「然。」 乃以酒瀝地,地即墳起。又呼犬,取一臠肉擲之,犬啖肉立死。驪姬佯爲不信,再呼小內侍,使嘗酒肉。小內侍不肯,强之。纔下口,七竅流血亦死。驪姬佯大驚,疾趨下堂而呼曰:「天乎!天乎!國固太子之國也。君老矣,豈旦暮之不能待,而必欲弑之?」 言罷,雙淚俱下。復跪於獻公之前,帶噎而言曰:「太子所以設此謀者,徒以妾母子故也。願君以此酒肉賜妾,妾寧代君而死,以快太子之志!」 即取酒欲飮。獻公奪而覆之,氣咽不能出語。驪姬哭倒在地,恨曰:「太子眞忍心哉!其父而且欲弑之,況他人乎?始君欲廢之,妾固不肯。後囿中戲我,君又欲殺之,我猶力勸。今幾害我君,妾誤君甚矣!」 獻公半晌方言,以手扶驪姬曰:「爾起。孤便當暴之群臣,誅此賊子!」 當時出朝,召諸大夫議事。惟狐突久杜門,里克稱足疾,丕鄭父托以他出不至,其餘畢集朝堂。

 

臠 : 고기도막 련/여윌 란. 고기 도막베어  고깃덩이. 여위다. 여윈모양.       

噎 : 목멜 열/목구멍아플 예. 목메다. 근심하다. 가로막다. 덮어서 막다. 울음소리. 

 

 

 

며칠이 지나자 헌공은 적환(翟桓)으로 사냥을 나갔다.

여희는 배우 시와 상의하고 사람을 시켜 태자에게 알렸다.

"주군의 꿈속에서 태자의 모친인 제강(齊姜)이 '먹을 것이 없어 고통스럽게 굶주리고 있다.' 고 호소했으니 빨리 제사를 지내야 합니다."

제강의 사당은 따로 곡옥에 있었다. 신생이 제사상을 설치하고 모친인 제강을 제사지내고 사람을 시켜 헌공에게 제사고기를 보냈다. 

헌공은 사냥을 나가 아직 돌아오지 않아서 제사고기를 궁 안에 두었다. 6일 후 헌공이 돌아왔다.

여희는 술에 짐독을 넣고 독약을 고기에 발라 헌공에게 바치며 말했다. 

"첩의 꿈속에 제강이 나타나 굶주려 고통받는다고 하였는데 차마 지나칠 수 없었는데 주군께서는 사냥을 나가시고 계시지 않아 태자에게 알려 제사를 지내게 하였습니다. 지금 제사고기가 이곳에 이르러 주군을 기다린지 오래입니다." 

헌공이 잔을 들어 맛을 보려고 하는데 여희가 무릎을 꿇고 막으며 말했다.

"술과 음식이 외부에서 들어오면 시식해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헌공이 말했다. "그렇구나!"

그리하여 술을 땅에 뿌리자 땅이 바로 부풀어 올라왔다.  또 개를 불러 고기 한 토막을 던져주니 개가 고기를 먹자마자 바로 죽었다.

여희가 거짓으로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다시 어린 내시를 불러 술과 고기를 맛보라고 하자 어린 내시가 불응하여 강제로 먹였다. 먹자마자 순식간에 일곱개의 구멍에서 피를 흘리며 즉사했다. 

여희는 크게 놀라는체 하며 당아래로 뛰쳐나가 외쳤다. "하늘이여! 하늘이여! 이 나라는 이미 태자의 나라이다. 주군께서 연로하신데 어찌 잠시를 기다리지 못하고 꼭 죽이려 하는가?"

말을 마치자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다시 헌공앞에서 무릎꿇고는 근심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태자가 이렇게 계책을 꾸미는 것은 오직 첩의 모자때문입니다. 바라건대 주군께서는 첩에게 이 술과 고기를 내려주십시오. 첩은 주군을 대신하여 죽을지언정 결코 태자의 뜻을 이루게 할 수 없습니다. "

그리고 바로 술잔을 마시려고 하자 헌공이 빼앗아 땅에 쏟아버리고는 기가 막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여희가 통곡하며 땅에 엎드리며 한탄했다.

"태자는 참으로 잔인한 마음을 지녔구나. 그 아버지조차 죽이려고 하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임에랴! 애초에 주군께서 태자를 폐하려고 하셨으나 내가 굳이 말렸었다. 후에 원유 안에서 나를 희롱하여 주군께서 또 죽이려고 하시는 것을 내가 힘써 막았었다. 지금 또다시 주군과 나를 죽이려고 하니 내가 주군을 너무 그르치는구나!"

헌공이 한참 지나서 여희의 손을 잡아 부축하면서 말했다.

"일어나거라. 내가 곧 신하들에게 그의 행실을 폭로하고 이 못된 자식놈을 죽이리라!"

그때 조정에 나가 대부들을 소집하여 태자의 일을 논의했다.  오직 호돌은 두문불출한지 오래이고, 이극은 발을 다쳤다는 핑계로, 비정보는 부탁을 받고 출타한 후 돌아오지 않아 불석하지 못했을 뿐 그 나머지는 모두 조회에 참석했다. 

 

 

 

  

獻公以申生逆謀,告訴群臣。群臣知獻公畜謀已久,皆面面相覷,不敢置對。東關五進曰:「太子無道,臣請爲君討之。」獻公乃使東關五爲將,梁五副之,率車二百乘,以討曲沃。囑之曰:「太子數將兵,善用眾。爾其愼之!」 狐突雖然杜門,時刻使人打聽朝事。聞「二五」戒車,心知必往曲沃。急使人密報太子申生。申生以告太傅杜原款。原款曰:「胙已留宮六日,其爲宮中置毒明矣。子必以狀自理,群臣豈無相明者?毋束手就死爲也!」 申生曰:「君非姬氏,居不安,食不飽。我自理而不明,是增罪也。幸而明,君護姬,未必加罪,又以傷君之心。不如我死!」 原款曰:「且適他國,以俟後圖如何?」 申生曰:「君不察其無罪,而行討於我,我被弑父之名以出,人將以我爲鴟鴞矣!若出而歸罪於君,是惡君也。且彰君父之惡,必見笑於諸侯。內困於父母,外困於諸侯,是重困也。棄君脫罪,是逃死也。我聞之:『仁不惡君,智不重困,勇不逃死。』」 乃爲書以復狐突曰:「申生有罪,不敢愛死。雖然,君老矣,子少,國家多難,伯氏努力以輔國家,申生雖死,受伯氏之賜實多!」 於是北向再拜,自縊而死。死之明日,東關五兵到,知申生已死,乃執杜原款囚之,以報獻公曰:「世子自知罪不可逃,乃先死也。」 獻公使原款證成太子之罪。原款大呼曰:「天乎冤哉!原款所以不死而就俘者,正欲明太子之心也!胙留宮六日,豈有毒而久不變者乎?」 驪姬從屛後急呼曰:「原款輔導無狀,何不速殺之?」 獻公使力士以銅鎚擊破其腦而死。群臣皆暗暗流涕。

 

 

 

 

헌공이 태자 신생의 역모를 신하들에게 알렸다.  신하들은 헌공이 이미 오랫동안 계책을 키워온 것을 알고 있었던 터라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감히 대답하지 못했다. 

동관오(東關五)가 나아가 말했다. "태자가 무도하니 신은 주군께서 그의 죄를 다스리시기를 청합니다."

이에 헌공은 동관오를 장수로 삼고 양오(梁五)를 부장으로 삼아 병거 200승을 거느리고 곡옥을 치게 하였다. 

헌공이 당부했다. "태자는 수차례에 걸쳐 군사들을 통솔하여 병사들을 잘 운용하니 너희들은 신중히 하라!"

호돌은 비록 그렇게 두문불출하고 있었지만 시시각각으로 사람을 시켜 조정안의 일을 탐문해왔었다.  듣자니 이오(二五 : 동관오와 양오)가 병거를 인솔하고 떠났다고 하는데 이는 반드시 곡옥의 태자를 치러 건 것임을 알았다. 급히 사람을 시켜 태자 신생에게 은밀히 알리니 신생은 태부 두원관(杜原款)에게 고했다. 

두원관이 말했다.

"제사고기가 이미 궁중에서 6일간이나 있었으니 궁중에서 독을 쓴 것이 분명합니다. 태자께서는 반드시 스스로 그 상황을 밝히셔야 합니다. 신하들 중에 어찌 밝히고자 하는 자가 없겠습니까? 속수무책으로 죽음을 맞이하지 마십시오." 

신생이 말했다.

"주군께서는 여희가 없으면 지내시는 것도 편하지 않으며 음식을 드셔도 배부르지 않으십니다. 내가 스스로 밝히려 해도 밝혀지지 않을 것이며 죄만 더하게 될 것입니다. 다행히 밝혀진다 해도 주군께서는 여희를 비호하시어 반드시 벌을 내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또 주군의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 제가 죽는 것이 낫습니다!"

그러자 두원관이 물었다.

"그렇다면 타국으로 가시어 후일을 도모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신생이 대답했다.

"주군께서는 죄가 없다는 것을 살피지도 않으시고 내 죄를 다스리는 일부터 행하십니다.  내가 부친을 시해하려고 하였다는 누명을 쓰고 탈출한다면 사람들은 나를 치효(鴟鴞 : 부엉이)처럼 무도한 자로 여기게 될 것입니다. 만약 탈출하여 죄가 주군에게 돌아가기라도 한다면 이것이야 말로 주군을 비방하는 것입니다. 또 주군의 죄를 드러내게 되면 반드시 제후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안으로 부모가 곤경을 겪게 하고 밖으로 제후들에게 난처함을 겪게 하는 것은 이중의 고통입니다. 주군을 버려 처벌을 면하는 것이야 말로 죽는 것을 피하는 것입니다.  내가 듣건대, '인(仁)은 군주를 비방하지 않는 것이고, 지(智)는 이중의 고통을 겪지 않는 것이며, 용(勇)은 죽음을 피하지 않는것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서찰을 작성하여 호돌(狐突)에게 고했다.

"신생이 죄가 있으니 감히 죽음을 안타깝게 여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더라도 주군께서는 연로하시고 아들은 어린데도 나라에 어려움이 많으니 백씨께서는 힘써 나라를 도와주십시오. 신생이 비록 죽지만 백씨로부터 받은 은혜는 참으로 많습니다."

이리하여 북쪽을 향해 재배한 후 스스로 목매달아 죽었다. 

태자가 죽은 다음 날 동관오의 군대가 도착하여 신생이 이미 죽은 것을 알고 두원관을 잡아 가둔 후 헌공에게 보고했다.

"태자는 스스로 죄를 피할 수 없음을 알고 먼저 죽었습니다."

헌공은 두원관으로 하여금 태자의 죄를 입증하게 하였으나 두원관은 큰 소리로 외쳤다.

"하늘이여! 원통하구나! 내가 죽지않고 잡혀온 것은 바로 태자의 마음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제사고기가 궁중에 6일동안이나 있었는데 독이 들어있었다면 어찌 오랫동안 상하지 않았겠습니까?"

여희가 병풍 뒤에서 나오며 갑자기 외쳤다.

"두원관은 태자를 보좌하며 가르쳤으나 공이 하나도 없는데 어찌 빨리 죽이지 않습니까?"

헌공이 역사(力士)로 하여금 두원관의 머리를 쇠망치(銅鎚)로 때려 죽이게 하였다. 군신들은 암암리에 눈물을 흘렸다.   

 

 

 

 

梁五、東關五謂優施曰:「重耳夷吾,與太子一體也。太子雖死,二公子尙在,我竊憂之。」 優施言於驪姬,使引二公子。驪姬夜半復泣訴獻公曰:「妾聞重耳夷吾,實同申生之謀。申生之死,二公子歸罪於妾,終日治兵,欲襲晉而殺妾,以圖大事,君不可不察!」 獻公意猶未信。蚤朝,近臣報:「蒲屈二公子來覲,已至關;聞太子之變,即時俱回轅去矣。」 獻公曰:「不辭而去,必同謀也。」 乃遣寺人勃鞮率師往蒲,擒拿公子重耳。賈華率師往屈,擒拿公子夷吾。狐突喚其次子狐偃至前,謂曰:「重耳駢脅重瞳,狀貌偉異,又素賢明,他日必能成事。且太子旣死,次當及之。汝可速往蒲,助之出奔,與汝兄毛,同心輔佐,以圖後舉。」狐偃遵命,星夜奔蒲城來投重耳。重耳大驚,與狐毛狐偃方商議出奔之事,勃鞮車馬已到。蒲人欲閉門拒守,重耳曰:「君命不可抗也!」勃鞮攻入蒲城,圍重耳之宅。重耳與毛偃趨後園,勃鞮挺劍逐之。毛偃先踰牆出,推牆以招重耳。勃鞮執重耳衣袂,劍起袂絕,重耳得脫去。勃鞮收袂回報。三人遂出奔翟國。

 

鞮 : 가죽신 제. 가죽신. 장식없는 신. 통역하다. 억센 날개.

 

 

 

양오와 동관오가 배우 시에게 말했다.

"중이(重耳)와 이오(夷吾)는 태자와 한 몸이네. 태자가 죽었어도 두 공자가 아직 남아 있어 은근히 걱정이네."

배우 시가 여희에게 말하여 두 공자도 죽이게 했다.

여희는 밤이 깊어지자 다시 헌공에게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했다.

"첩이 듣건대 사실은 중이와 이오도 신생과 함깨 모의했다고 합니다. 신생이 죽자 두 공자가 첩에게 그 죄를 돌리고 하루종일 군사들을 훈련시켜 도성을 습격하고 첩을 죽여 대사를 도모하고 있다 하오니 주군께서는 살피지 않으시면 안됩니다." 

그러나 헌공은 오히려 미심쩍어 하였다. 

이른 아침에 근신이 보고했다.

"포읍(蒲邑)과 굴읍(屈邑)의 두 분 공자가 주군을 알현하고자 관문까지 왔다가 태자가 변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죽시 수레를 돌려 돌아갔습니다."

헌공이 말했다. "인사도 없이 돌아간 것을 보니 틀림없이 함께 모의했구나."

그리하여 환관 발제(勃鞮)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포읍에 가서 공자 중이를 잡아오게 하고, 또 가화를 굴읍으로 보내 공자 이오를 잡아오게 하였다. 

호돌은 그의 둘째 아들 호언(狐偃)을 앞으로 불러 말했다.

"중이는 늑골이 붙어있고 눈동자가 둘이라 모습이 특이하고 본래 현명하여 후일 반드시 대업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또 태자가 이미 죽었으니 다음에는 마땅히 그가 군주의 자리를 이어야 한다. 너는 빨리 포읍에 가서 그를 도와 다른 나라로 망명하고 네 형 모(狐毛)와 더불어 한마음으로 그를 보좌하여 후일을 도모하거라."

호언이 명을 받들어 밤새 포읍성(蒲邑城)의 중이에게 달려갔다. 중이가 크게 놀라 호모, 호언 형제와 외국으로 망명할 일을 논의하고 있는데 발제의 거마가 이미 도착했다.

포읍의 병사들이 문을 닫아걸고 항거하려고 하자 중이가 말했다. "군주의 명은 항거해서는 안된다."

발제가 포성안으로 쳐들어와 중이의 집을 에워쌌다. 중이가 호모, 호언 형제와 더불어 후원으로 달려가자 발제가 검을 들고 뒤쫒았다. 호모형제가 먼저 담장을 넘어가서 담장위로 중이를 끌어 올리려고 하였다. 발제가 중이의 옷소매를 잡고 검을 휘둘렀으나 소매만 잘랐을 뿐이었고 중이는 가까스로 탈출할 수 있었다. 발제는 소매만 거두어 가서 복명했고, 중이 일행 세 사람은 마침내 적(翟)나라로 망명했다. 

 

 

 

  

翟君先夢蒼龍蟠於城上,見晉公子來到,欣然納之。須臾,城下有小車數乘,相繼而至,叫開城甚急。重耳疑是追兵,便敎城上放箭。城下大叫曰:「我等非追兵,乃晉臣願追隨公子者。」 重耳登城觀看,認得為首一人,姓趙,名衰,字子餘,乃大夫趙威之弟,仕晉朝爲大夫。重耳曰:「子餘到此,孤無慮矣。」 即命開門放入。餘人乃胥臣、魏犨、狐射姑、顚頡、介子推、先軫,皆知名之士。其他願執鞭負橐,奔走效勞,又有壺叔等數十人。重耳大驚曰:「公等在朝,何以至此?」 趙衰等齊聲曰:「主上失德,寵妖姬,殺世子,晉國旦晚必有大亂。素知公子寬仁下士,所以願從出亡。」 翟君敎開門放入,眾人進見。重耳泣曰:「諸君子能協心相輔,如肉傅骨,生死不敢忘德。」 魏犨攘臂前曰:「公子居蒲數年,蒲人咸樂爲公子死。若借助於狄,以用蒲人之眾,殺入絳城,朝中積憤已深,必有起爲內應者。因以除君側之惡,安社稷而撫民人,豈不勝於流離道途爲逋客哉?」 重耳曰:「子言雖壯,然震驚君父,非亡人所敢出也。」 魏犨乃一勇之夫。見重耳不從,遂咬牙切齒,以足頓地曰:「公子畏驪姬輩如猛虎蛇蝎,何日能成大事乎?」 狐偃謂犨曰:「公子非畏驪姬,畏名義耳。」 犨乃不言。

 

犨 : 소헐떡이는 소리 주. 소가 헐떡이는 소리. 소가 숨쉬는 소리. 소가 울다.    橐 : 전대 탁. 전대. 풀무. 사물의 소리. 작은 전대. 

效勞 : 진력(盡力)하다. 힘쓰다. 충성을 다하다. (충실하게) 복무하다.         如肉傅骨 : 뼈에 살을 바른(붙인) 것, 즉 한몸과 같다는 의미.

逋 : 달아날 포. 달아나다. 숨다. 체납함. 체납한 세금. 체포하다. 동떨어지다. 

 

 

 

적(翟)나라 군주는 앞서 푸른 용이 성위에 서려있는 꿈을 꾸었는데 당진의 공자 중이가 온 것을 보고 흔쾌히 받아들였다. 잠시 후 성아래에 작은 수레 여러 대가 계속 몰려와 큰 소리로 성문을 열어달라고 외치는데 형세가 매우 급했다. 중이가 추격군인가 의심하고 바로 성위에 올라가 활을 쏘게 하였다. 

그러자 성 아래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우리는 추격하는 병사들이 아니라 바로 당진의 신하로 원해서 공자를 따라온 사람들이오."

중이가 성위에 올라 바라보는데 맨 앞에 있는 한 사람을 알아보았다. 그는 성이 조(趙)이며 이름은 최(衰), 자는 자여(子餘)인데 대부 조위(趙威)의 동생이며 벼슬은 당진 조정의 대부였다. 

중이가 말했다. "자여가 이곳에 왔으니 고(孤)는 이제 걱정할 것 없도다."

즉시 명을 내려 성문을 열고 모두 들어오게 하였다.  나머지 사람은 서신(胥臣), 위주(魏犨), 호석고(狐射古), 전힐(顚頡), 개자추(介子推), 선진(先軫) 등 모두가 진나라의 저명한 인재(人才)들이었다. 기타 사람들은 말채찍을 잡거나 전대를 매고 동분서주하며 충성을 다하겠다며 따르기를 원하는 호숙(壺叔)등 수십명이었다. 

중이가 크게 놀라 물었다. "공들은 조정에 있는 사람들인데 어찌 이곳에 온 것입니까?"

조최등이 일제히 말했다. "주상이 덕을 잃고 여희를 총애하여 세자를 죽였으니 당진은 반드시 조만간에 크게 어지러워질 것입니다. 평소 공자께서는 선비들에게 관대하고 어질게 대하셨기 때문에 공자님을 따라 함께 망명하기를 원합니다."

적(翟)나라 군주가 궁문을 열고 들어오라 하여 사람들이 나아가 적나라 군주를 알현했다. 

중이가 울면서 말했다.

"여러분들이 협심하여 도울 수 있다면 한몸이나 마찬가지이니 죽는다 해도 감히 그 은덕을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위주가 팔을 걷어부치며 앞으로 나가 말했다.

"공자께서 수 년동안 포읍에서 계실때 은덕을 베푸시어 포읍사람들은 모두 공자를 위해 죽는 것을 즐겁게 여겼습니다.  만일 적(狄 = 翟)나라의 도움을 받아 포읍의 병사들을 써서 도읍인 강성(絳城)으로 짓쳐 들어간다면 조정안에 이미 분노가 팽배해 있으므로 반드시 내응을 하며 일어나는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군주의 측근에 있는 악인들을 제거하여 사직을 안정시키고 백성을 어루만진다면, 어찌 길을 떠돌아 다니는 망명객의 신세보다 낫지 않겠습니까?"

중이가 말했다.

"그대의 말이 비록 장하지만 그렇게 하면 군주이자 부친을 놀라게 하는 것이니 망명한 자식으로서 감히 할 수 없는 일이오."

위주는 한낱 일개 용부(勇夫)라 중이가 자신의 의견에 따르지 않는 것을 보고 이를 갈고 발을 구르며 말했다.

"공자께서 여희의 무리를 맹호(猛虎)나 사갈(蛇蝎)처럼 두려워하신다면 어느날에 대사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호언이 위주에게 말했다. "공자께서는 여희를 두려워하시는 것이 아니라 명분과 의를 두려워하시는 것입니다."

위주가 마침내 조용해졌다.

 

 

 

昔人有古風一篇,單道重耳從亡諸臣之盛:    

蒲城公子遭讒變,輪蹄西指奔如電。

擔囊仗劍何紛紛?英雄盡是山西彥。

山西諸彥爭相從,呑雲吐雨星羅胸。

文臣高等擎天柱,武將雄誇駕海虹。

君不見,趙成子,冬日之溫徹人髓。

又不見,司空季,六韜三略饒經濟。

二狐肺腑兼尊親,出奇制變圓如輪。

魏犨矯矯人中虎,賈佗强力輕千鈞。

顚頡昻藏獨行意,直哉先軫胸無滯。

子推介節誰與儔?百鍊堅金任磨礪。

頡頏上下如掌股,周流遍歷秦齊楚。

行居寢食無相離,患難之中定臣主。

古來眞主百靈扶,風虎雲龍自不孤。

梧桐種就鸞鳳集,何問朝中菀共枯?

 

趙成子 : 조최(趙衰). 시호가 성(成)이라 조성(趙成)으로 불리었으며 조성자 또는 성계(成季)로도 썼다.

           호언(狐偃)의 아들 호역고(狐射姑)는 조최는 겨울날의 태양(冬日之日)과 같은 사람이라고 하였다. 즉 '겨울날의 해'라는 뜻으로,

           온화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을 뜻하며 조최의 성품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司空季 : 서신(胥臣)의 별호. 자는 계자(季子)로써 사공(司空)이라는 벼슬을 지냈음으로 사공계자(司空季子)라고도 부른다.

           진문공이 패자를 칭한 후 성복대전에서 세운 공로로 구읍(臼邑)에 봉해져 성을 구(臼)로 바꿔 구계(臼季)로 불렀다. 유랑 생활

           중 진문공에게 목공의 딸 회영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고, 성복대전에서 군사들에게 호랑이 가죽을 씌워 초군의 말들을 놀라게

           하여 승리의 전기를 마련했다. 

風虎雲龍 : 바람 탄 호랑이와 구름 위의 용, 뜻과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구하고 좇다. ​

 

 

옛날 어떤 사람이 고풍의 시 한편을 지어 중이를 따라 망명한 신하들의 왕성한 기세를 모두 말했다. 

 

포성(蒲城)의 공자가 참소를 받는 변을 당해 서쪽으로 수레를 몰아 번개처럼 탈출했도다.

짐을 지고 검에 의지하며 어찌 분분히 몰려드는가? 영웅들은 모두 산서(山西)지방의 선비들이었네.

산서의 선비들이 다투어 따르는데 모두 웅대한 포부를 품은 영걸들이었도다.

문신들은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감들이었고 무장들은 무지개를 타고 바다를 넘는 영웅들이었도다.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조성자는 겨울날의 태양처럼 그 온기가 사람들의 골수(骨髓)에 닿았음을.

또 보지 못했는가? 사공계는 육도삼략에 밝아 나라를 풍요롭게 하였음을.

호씨(狐氏)형제는 기이한 계책을 내어 바퀴가 굴러가듯 변화에 잘 대처했도다.

위주는 날래고 사나워 범같은 자였고 가타는 힘이 강해 삼만 근을 가볍게 여겼도다.

전힐은 높은 뜻을 홀로 실행하였고,  올곧은 선진은 막힌 것이 없었도다. 

개자추의 절개는 누구와 짝이 되겠는가? 백 번이나 담금질한 강한 쇠를 숫돌에 간 것처럼 빛났도다.

모두 손바닥과 무릎 위를 오르내리는 것처럼 진나라, 제나라, 초나라를 두루 돌아다녔도다.

행동거지와 침식에 있어서도 떨어지지 않았고 환난 중에도 신하와 주군의 위계가 엄정했도다.

옛부터 진정한 군주는 백신(百神)이 돕는다 했고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함께하니 스스로 외롭지 않았도다.

오동나무를 심어 놓으면 봉황이 모이는데 어찌 조정에서 울(菀)과 고(枯)를 묻는가?

 

 

 

 

重耳自幼謙恭下士,自十七歲時,已父事狐偃,師事趙衰,長事狐射姑,凡朝野知名之士,無不納交。故雖出亡,患難之際,豪傑願從者甚眾。

惟大夫郤芮,與呂飴甥腹心之契,虢射是夷吾之母舅,三人獨奔屈以就夷吾。相見之間,告以:「賈華之兵,旦暮且至。」夷吾即令歛兵爲城守計。賈華原無必獲夷吾之意,及兵到,故緩其圍,使人陰告夷吾曰:「公子宜速去。不然,晉兵繼至,不可當也。」 夷吾謂郤芮曰:「重耳在翟,今奔翟何如?」 郤芮曰:「君固言二公子同謀,以是爲討。今異出而同走,驪姬有辭矣。晉兵且至翟,不如之梁。梁與秦近,秦方强盛,且婚姻之國,君百歲後,可借其力以圖歸也。」 夷吾乃奔梁國。賈華佯追之不及,以逃奔復命。獻公大怒曰:「二子不獲其一,何以用兵?」 叱左右欲縛賈華斬之。丕鄭父奏曰:「君前使人築二城,使得聚兵爲備,非賈華之罪也。」 梁五亦奏曰:「夷吾庸才無足慮。重耳有賢名,多士從之,朝堂爲之一空。且翟吾世仇,不代翟除重耳,後必爲患。」 獻公乃赦賈華,使召勃鞮。鞮聞賈華幾不免,乃自請率兵伐翟,獻公許之。勃鞮兵至翟城,翟君亦盛陳兵於採桑,相守二月餘。丕鄭父進曰:「父子無絶恩之理。二公子罪惡未彰,旣已出奔,而必追殺之,得無已甚乎?且翟未可必勝,徒老我師,為鄰國笑。」 獻公意稍轉,即召勃鞮還師。

獻公疑群公子多重耳夷吾之黨,異日必爲奚齊之梗,乃下令盡逐群公子。晉之公族,無敢留者。於是立奚齊爲世子。百官自「二五」及荀息之外,無不人人扼腕,多有稱疾告老者。時周襄王之元年,晉獻公之二十六年也。

 

扼腕 : 분격(憤激)하여 팔짓을 함. 성나고 분(憤)하여 주먹을 쥠.

 

 

 

중이는 어려서부터 아랫사람들에게 겸손하고 공손했으며, 17살때부터는 이미 호언(狐偃)을 아버지처럼 섬겼고 조최(趙衰)를 스승으로 섬겼으며 호역고(狐射姑)를 연장자로 섬겨 조야(朝野)의 모든 저명한 선비들과 교분을 맺지 않은 자가 없었다. 그러므로 비록 망명중이라 환난을 겪고 있는데도 호걸들이 원해서 중이를 따르는 자들이 매우 많았다.   다만 대부 극예(郤芮)와 여이생(呂飴甥)은 서로 마음이 통하는 교분이 있었고, 괵석(虢射)은 이오의 외삼촌이라 세 사람은 다른 사람과 달리 굴읍(屈邑)으로 도망쳐 이오에게 갔다. 

서로 만나고 있는 중에 "가화의 병사들이 조만간에 도착할 것입니다."라고 보하였다.

이오는 바로 영을내려 군사를 거두고 성을 지킬 계책을 세웠다. 가화는 원래 꼭 이오를 잡으려는 뜻이 없었기 때문에 병사들이 굴읍성에 이르자 천천히 성을 포위하며 사람을 시켜 은밀히 이오에게 알렸다.

"공자께서는 속히 떠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진의 병사들이 계속 도착하여 당해낼 수 없을 것입니다." 

이오가 극예에게 물었다. "중이가 적(翟)나라에 있으니 나도 적나라로 망명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극예가 대답했다. "주군께서는 본래 두 분 공자께서 태자와 공모하였다 하시고 이렇게 토벌군을 보내셨습니다. 지금 따로 출발해서 한 곳으로 망명하신다면 여희가 또 참소할 것입니다. 진병이 머지않아 적나라에 이르게 될 것이니 양(梁)나라로 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양나라와 섬진은 가까운 거리에 있고 섬진은 지금 강성해지고 있으며 또 우리나라와 혼인한 나라이므로 주군께서 돌아가신 후에는 섬진의 병력을 빌려 귀국을 도모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오는 양나라로 망명했다.

가화는 추격했으나 따라잡지 못한 채 하고 이오가 이미 망명하였다고 복명했다. 

헌공이 대노했다. "두 아들 중에 하나도 잡지 못하다니 군사들을 어땋게 기용했단 말인가?"  

그리고 좌우를 꾸짖어 가화를 묶고 참하려 했다. 

비정보(丕鄭父)가 아뢰었다.

"주군께서는 앞서 사람을 보내 두 곳에 성을 쌓게 하셨으며 병사들을 모아 만일을 대비케 하셨습니다. 가화의 죄가 아닙니다."

양오도 아뢰었다.

"이오는 평범한 자라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중이는 어진 자로 이름이 알려져 있어 많은 선비들이 추종하여 조당이 텅 비었습니다.  또 적(翟)나라는 우리나라와는 대를 이어온 원수라 후일 반드시 환난이 있을 것입니다."

헌공은 가화를 용서하고 발제를 부르게 했다. 발제는 가화가 가까스로 면직당하지 않았다고 듣고는 자청해서 병사들을 이끌고 적나라를 치겠다고 하였는데 헌공이 허락했다. 

발제의 군사가 적나라 도성에 이르자  적나라 군주는 채상(採桑)에 성대하게 진을 쳤으며 서로 대치한지 2개월 여가 지났다. 

비정보가 진언했다.

"부자간에는 낳아준 은혜를 끊을 수 없는 이치가 있고  두 공자의 죄악은 드러나지 않았으며 이미 다른 나라로 망명했는데도 꼭 추살(追殺)하려고 한다는 것은 너무 심한 것이 아닙니까?  또 적나라와 싸워 반드시 이긴다고 할 수도 없는데 부질없이 우리 군사들만 지치게 한다면 이웃나라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이에 헌공은 뜻을 바꿔 발제군을 귀국시켰다.

헌공은 뭇 공자들의 다수가 중이와 이오의 무리가 아닌가 의심하고 훗날 반드시 해제에게 재앙이 될 것이라 여기고 영을 내려 뭇 공자들을 축출했다. 당진의 공족들은 모두 당진에 머물 수 없었다. 이리하여 해제를 세자로 세웠다.  백관들은 이오(二五)와 순식의 무리를 제외하고는 분개하지 않는 자가 없었으며 많은 신하들이 병을 핑계대거나 늙었다는 이유를 들어 물러났다. 

그때가 주나라 양왕(襄王) 원년이고 당진의 헌공(獻公)26년이었다.

 

 

  

  

是秋九月,獻公奔赴葵邱之會不果,於中途得疾,至國還宮。驪姬坐於足,泣曰:「君遭骨肉之釁,盡逐公族,而立妾之子。一旦設有不諱,我婦人也,奚齊年又幼,倘群公子挾外援以求入,妾母子所靠何人?」 獻公曰:「夫人勿憂!太傅荀息,忠臣也,忠不二心,孤當以幼君託之。」 於是召荀息至於榻前,問曰:「寡人聞『士之立身,忠信爲本。』 何以謂之忠信?」 荀息對曰:「盡心事主曰忠,死不食言曰信。」 獻公曰:「寡人欲以弱孤累大夫,大夫其許我乎?」荀息稽首對曰:「敢不竭死力!」獻公不覺墮淚,驪姬哭聲聞幕外。數日,獻公薨。驪姬抱奚齊以授荀息,時年纔十一歲。荀息遵遺命,奉奚齊主喪,百官俱就位哭泣。驪姬亦以遺命,拜荀息爲上卿,梁五東關五加左右司馬,歛兵巡行國中,以備非常。國中大小事體,俱關白荀息而後行。以明年爲新君元年,告訃諸侯。

 

設 : 設令, 設使.

 

 

 

그해 9월 헌공이 규구(葵邱)에서 개최된 제후들의 회맹에 참가하려고 달려갔으나 회의가 이미 끝나 참석하지 못하고 귀국하는 도중에 병을 얻었다. 

여희가 헌공의 발 언저리에 앉아 울면서 말했다.

"주군께서는 골육간의 균열을 겪으시면서 공족들을 모두 추방하고 첩의 아들을 세자로 세우셨습니다. 일단 신하들이 싫어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저는 아녀자이며 해제는 나이가 어려서 뭇 공자들이 외부의 지원을 받아 쳐들어온다면 첩의 모자는 누구에게 의지합니까?"

헌공이 대답했다.

"부인은 걱정 말라. 태부 순식은 충신이다. 충신은 다른 마음을 갖지 않나니 내가 마땅히 그에게 어린 주군을 부탁하리라."

그리하여 순식을 탑전(榻前)에 불어 물었다.

"과인이 듣기로 '선비가 몸을 바로 세우려면 충(忠)과 신(信)을 근본으로 하여야 한다.'고 하였소. 충과 신은 무엇이라 생각하시오?"

순식이 대답했다.

"마음을 다하여 주군을 섬기는 것이 충이며, 죽더라도 약속을 어기지 않는 것을 신이라 합니다."

헌공이 말했다.

"과인은 어린 세자를 대부에게 부탁하려고 하니 대부는 내 말을 받아들이겠는가?"

순식이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감히 죽을 힘을 다하지 않으오리까!"

헌공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는데 여희의 곡성이 문밖에까지 들렸다. 

며칠 후 헌공이 죽었다.  여희는 해제를 안고 와서 순식에게 인계했는데 해제는 그때 겨우 11살이었다.  순식은 헌공의 유명에 따라 해제를 받들어 장례를 모두 주관하게 하고 백관들이 모두 자리로 나가 곡했다. 여희는 유명에 따라 순식에게 상경(上卿)을 제수했다. 양오와 동관오에게는 좌우 사마직을 더하여 제수하고 군사들을 거두어 나라 안을 순시하며  비상시에 대비케 하였다. 나라안의 대소사는 모두 순식에게 고한 후 시행하게 하였다. 

다음해를 새로운 군주 원년으로 하기로 하고 제후들에게 상을 알렸다.

 

 

 

畢竟奚齊能得幾日爲君,且看下回分解。

 

결국 해제가 며칠간이나 군주가 될 수 있을까 다음 회를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