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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歷史와文學/列國志

第三一回. 晉惠公怒殺慶鄭, 介子推割股啖君.

by 柳川 2021. 3. 22.

第三一回. 晉惠公怒殺慶鄭, 介子推割股啖君.

 

 

話說晉惠公囚於靈臺山,只道穆姬見怪,全不知衰絰逆君之事。遂謂韓簡曰:「昔先君與秦議婚時,史蘇已有『西鄰責言,不利婚媾』之占。若從其言,必無今日之事矣。」 簡對曰:「先君之敗德,豈在婚秦哉?且秦不念婚姻,君何以得入?入而又伐,以好成仇,秦必不然,君其察之。」 惠公嘿然。未幾,穆公使公孫枝至靈臺山問侯晉侯,許以復歸。公孫枝曰:「敝邑群臣,無不欲甘心於君者。寡君獨以君夫人登臺請死之故,不敢傷婚姻之好。前約河外五城,可速交割,再使太子圉爲質,君可歸矣。」 惠公方纔曉得穆姬用情,愧慚無地。即遣大夫郤乞歸晉,吩咐呂省以割地質子之事。省特至王城,會秦穆公,將五城地圖,及錢穀戶口之數獻之,情願納質歸君。穆公問:「太子如何不到?」 省對曰:「國中不和,故太子暫留敝邑。俟寡君入境之日,太子即出境矣。」 穆公曰:「晉國爲何不和?」 省對曰:「君子自知其罪,惟思感秦之德。小人不知其罪,但欲報秦之仇。以此不和也。」 穆公曰:「汝國猶望君之歸乎?」 省對曰:「君子以爲必歸,便欲送太子以和秦。小人以爲必不歸,堅欲立太子以拒秦。然以臣愚見,執吾君可以立威,舍吾君又可以見德,德威兼濟,此伯主之所以行乎諸侯也。傷君子之心,而激小人之怒,於秦何益?棄前功而墜伯業,料君之必不然矣。」 穆公笑曰:「寡人意與飴甥正合!」命孟明往定五城之界,設官分守。遷晉侯於郊外之公館,以賓禮待之。饋以七牢,遣公孫枝引兵同呂省護送晉侯歸國。(凡牛羊豕各一,謂之一牢,七牢,禮之厚者。此乃穆公修好之意也。)

 

飴甥 : 당진의 대부 呂甥. 이름이 이()이며가 자금(子金)이다呂省 瑕甥 瑕呂鮐甥등으로도 쓴다

        陰을 봉읍으로 받았기 때문에 陰飴甥이라고도 한다.

 

 

 

한편 당진의 혜공은 영대산에 갇혀 있으면서 단지 생각하는 것이라고는 목희가 괴이히 여길 것이라는 것 뿐이었는데 목희가 상복을 입고 목공을 맞이하여 그를 구원한 일을 전혀 알지 못했다. 

마침내 한간에게 말했다.

"옛날 선군께서 섬진과 목희의 혼인을 논의할 때 태사 소(蘇)에게 길흉을 점치게 하였는데 '서쪽의 이웃에게 꾸짖음을 당했어도, 갚을 수가 없다.'는 점괘를 얻었었소. 그 말에 따랐다면 반드시 오늘의 일은 없었을 것이오."

한간이 대답했다.

"선군의 덕이 없었기 때문이지 어찌 섬진과 혼인했기 때문이겠습니까? 또 섬진에서 백희와 혼인한 일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주군께서 어떻게 귀국하여 군주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섬진의 군주가 주군을 귀국시키고도 정벌한 것은 주군께서 호의를 배신했기 때문입니다. 진나라에서는 반드시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주군께서는 성찰하시기 바랍니다."

혜공은 말이 없었다. 얼마 후 목공이 공손지를 보내 영대산으로 가서 혜공을 문안드리게 하고 당진의 군주로 복귀시킨다고 하였다.

공손지가 말했다.

"저희 나라 신하들 모두가 군주를 달갑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희 군주께서는 오로지 군부인께서 숭대(崇臺) 위로 올라가 죽기를 청하셨기 때문에 감히 혼인의 정리를 상하게 하시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전에 약속하셨던 하외(河外) 5성을 속히 할양해주시고 또 태자 어(圉)를 인질로 보내셔야 군주께서는 돌아가실 수 있습니다."

혜공은 비로소 목희가 부부의 정을 이용하여 목공에게 호소한 결과 자신이 용서받았음을 깨닫고 부끄러움에 몸둘 곳을 찾지 못했다.

즉시 극걸(郤乞)을 당진으로 보내 여생(呂省)에게 5성을 할양하고 태자를 인질로 보내는 일을 행하도록 분부했다.  여생은 바로 왕성(王城)으로 가서 섬진의 목공을 만나 5성의 지도와  금전, 양곡과 호구(戶口)의 수량에 이르기까지의 기록을 헌공에게 바치고 인질을 보내는 것은 혜공이 귀국한 후에 행하기를 원했다.

혜공이 물었다.

"태자는 어찌 오지 않았는가?"

여생이 대답했다.

"나라 안이 화합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태자가 잠시 저희 나라에 머물고 있어야 합니다. 저희 군주께서 국경을 넘는 날 태자가 바로 출국하게 될 것입니다."

목공이 물었다.

"당진에 어찌 불화가 있다고 하는가?"

여생이 대답했다. 

"군자는 스스로 그 잘못을 알고 오로지 섬진에서 베푼 은덕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인은 그 잘못을 모르고 단지 섬진에 원수 갚을 일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화합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목공이 물었다.

"그대의 나라에서는 아직도 혜공이 귀국하기를 바라고 있는가?"

여생이 대답했다.

"군자는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하여 곧 태자를 인질로 보내 섬진과 사이좋게 지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소인은 반드시 귀국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태자를 군주로 세워 섬진에 저항할 생각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섬진에서는 이미 저희 군주를 사로잡아 위엄을 세울 수 있었으며, 우리 주군을 놓아주신다면 또 덕을 베푸실 수 있으니, 위엄과 덕을 모두 이루는 것은 패주(伯主)가 제후들에게 행하는 바가 될 것입니다.  군자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소인을 격동시켜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섬진에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전에 세운 공적을 포기하고 패업(伯業)을 무너뜨리는 일은 군주께서 반드시 행하지 않으실 것으로 사료됩니다."

목공이 웃으며 말했다.

"과인의 뜻이 이생(飴甥 = 呂省)의 말과 같도다."

그리하여 맹명시에게 명하여 하외 5성에 가서 경계를 확정한 후, 관청을 짓고 관리를 보내 나누어 지키게 하였다.  그리고 당진의 혜공을 교외의 공관으로 옮겨 빈례로 대하게 했다.  그리고 7뢰(牢)를 보내 접대하게 하고 공손지를 보내 병사들을 인솔하고 여생과 함께 혜공을 호송하여 당진에 귀국하도록 했다.

무릇 소, 양, 돼지 각 한 마리씩을 1뢰라 하니 7뢰는 예가 두터운 것이다. 이것은 목공이 당진과 우호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뜻이었다. 

 

 

 

 

惠公自九月戰敗,囚於秦,至十一月纔得釋。與難諸臣,一同歸國,惟虢射病死於秦,不得歸。蛾晰聞惠公將入,謂慶鄭曰:「子以救君誤韓簡,君是以被獲。今君歸,子必不免,盍奔他國以避之?」 慶鄭曰:「軍法:『兵敗當死,將爲虜當死。』 況誤君而貽以大辱,又罪之甚者。君若不還,吾亦將率其家屬以死於秦。況君歸矣,乃令失刑乎?吾之留此,將使君行法於我,以快君之心;使人臣知有罪之無所逃也。又何避焉?」 蛾晰嘆息而去。惠公將至絳,太子圉率領狐突、郤芮、慶鄭、蛾晰、司馬說、寺人勃鞮等,出郊迎接。惠公在車中望見慶鄭,怒從心起,使家僕徒召之來前,問曰:「鄭何敢來見寡人?」 慶鄭對曰:「君始從臣言,報秦之施,必不伐。繼從臣言,與秦講和,必不戰。三從臣言,不乘『小駟』,必不敗。臣之忠於君也至矣!何爲不見?」 惠公曰:「汝今尙有何言?」 慶鄭對曰:「臣有死罪三:有忠言而不能使君必聽,罪之一也。卜車右吉,而不能使君必用,罪之二也。以救君召二三子,而不能使君必不爲人擒,罪之三也。臣請受刑,以明臣罪。」 惠公不能答,使梁繇靡代數其罪。梁繇靡曰:「鄭所言,皆非死法也。鄭有死罪三,汝不自知乎?君在泥濘之中,急而呼汝,汝不顧,一宜死。我幾獲秦君,汝以救君誤之,二宜死。二三子俱受執縛,汝不力戰,不面傷,全身逃歸,三宜死。」 慶鄭曰:「三軍之士皆在此,聽鄭一言:『有人能坐以待刑,而不能力戰面傷者乎?』」 蛾晰諫曰:「鄭死不避刑,可謂勇矣!君可赦之,使報韓原之仇。」 梁繇靡曰:「戰已敗矣,又用罪人以報其仇,天下不笑晉爲無人乎?」 家僕徒亦諫曰:「鄭有忠言三,可以贖死。與其殺之以行君之法,不若赦之以成君之仁。」 梁繇靡又曰:「國所以强,惟法行也。失刑亂法,誰復知懼!不誅鄭,今後再不能用兵矣!」 惠公顧司馬說,使速行刑。慶鄭引頸受戮。

髯仙有詩嘆惠公器量之淺,不能容一慶鄭也。詩曰:

閉糴誰敎負泛舟?

反容奸佞殺忠謀。

惠公褊急無君德,

只合靈臺永作囚!

 

 

 

혜공이 9월 전쟁에서 패한 때부터 섬진에 갇혀있다가 11월이 되어서야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섬진에서 고생했던 신하들도 함께 귀국하였지만 오직 괵석만이 섬진에서 병으로 죽었기 때문에 귀국하지 못했다.

아석(蛾晰)은 혜공이 귀국한다는 소식을 듣고 경정(慶鄭)에게 말했다.

"대부께서는 주군을 구하라고 한간에게 전달을 잘못해 주군이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주군이 돌아오시면 대부는 반드시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인데 어찌 타른 나라로 망명하여 죽음을 피하지 않으십니까?"

경정이 대답했다.

"군법에 '전쟁에 지면 죽는 것이 당연하며 장수가 포로가 되어도 죽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였습니다. 하물며 주군을 그르쳐 큰 욕을 당하게 했으니 그 죄가 심한 것입니다.  주군이 만일 돌아오시지 못한다면 나도 가속들을 이끌고 섬진에 가서 죽으려고 하였습니다. 하물며 주군이 돌아오시는데 형을 받지 않으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여기에 머물러 있는 것은 주군께서 나에게 법을 행하시어 주군의 마음을 풀게 하려는 것이며 또 신하된 자가 죄가 있음을 알고도 도망치지 않는 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니 어찌 피하겠습니까?" 

아석이 탄식하며 물러갔다.

혜공이 도읍인 강성에 도착할 때 태자 어는 호돌, 극예, 경정, 아석, 사마열, 내시 발제등을 인솔하여 교외로 나가 혜공을 영접했다. 혜공은 수레 안에서 경정을 바라보자 노기가 치밀어 가복도를 시켜 경정을 앞으로 불러오게 하고 물었다.

"너는 어찌 감히 과인을 맞이하러 나왔느냐?"

경정이 대답했다.

"주군께서 애초에 신의 말을 따르셨더라면 섬진의 은덕(恩德)에 보답하여 반드시 쳐들어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신의 말을 들으셨으면 섬진과 강화를 체결하여 반드시 전쟁을 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세번 째로 신의 말을 들어주셨다면 소사가 끄는 수레를 타지 않으셨을 것이니 반드시 패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신의 주군에 대한 충성은 지극하였는데 어찌 마중을 나오지 않겠습니까?"

혜공이 물었다.

"너는 지금 무슨 할말이 있는가?

경정이 대답했다. 

"신에게 죽을 죄가 세 가지가 있으니, 주군으로 하여금 반드시 충언을 받아들이게도록 하지 못했으니 죄가 하나요, 거우장(車右將)을 점쳤을 때 제가 유일하게 길한 자로 점괘가 나왔는데도 주군으로 하여금 기용하게 할 수 없었으니 그 죄가 둘이며, 주군을 구하라고 여러분들을 불러 주군으로 하여금 반드시 남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 하지 못한 것이 죄의 세번 째입니다. 신은 형을 받고자 하오니 처벌하시고 신의 죄를 밝히십시오."

혜공이 답을 할 수 없어 양요미로 하여금 그의 죄를 꾸짖게 하니 양요미가 말했다.

"네사 말한 것은 모두 죽을 죄가 아닌 것들이다. 너에게 죽을 죄가 셋이 있으니 너도 스스로 알고 있지 않느냐?  주군께서 진흙탕에 빠져 급히 너를 부르셨는데도 너는 돌아보지 않았으니 죽어 마땅한 죄 하나요,  내가 섬진의 군주를 거의 잡게 되었는데 네가 주군을 구하라고 전하여 우리를 그르치게 한 것이 죽어 마땅한 죄 둘이며, 여러분들이 모두 사로잡혔는데도 너는 싸움에 힘쓰지 않아 몸에 상처도 입지 않고 온전한 몸으로 도망쳐 돌아왔으니 죽어 마땅한 죄 셋이다."

경정이 말했다.

"삼군의 장수들이 모두 여기에 있으니 내가 한마디 하리라.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힘들게 싸우지 않아 부상을 당할 수 없다.' 고 할 수 있습니까?'"

아석이 간했다.

"경정은 죽을 것을 알면서도 형을 피하려고 하지 않았으니 용사라고 할만 합니다. 주군께서 용서하시고 그로 하여금 한원의 원수를 갚게 하소서."

그러자 양요미가 말했다.

"전쟁에 이미 패하였는데 또 죄인을 기용하여 원수를 갚으라 한다면 천하에서 당진에 사람이 없다고 비웃지 않겠소?"

가복도도 나와 간했다.

"경정은 충언을 세번 올린 것으로 죽음을 속죄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에게 죽음을 내려 주군께서 법을 집행하시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시어 주군께서 인(仁)을 이루시는 것이 낫습니다."

양요미가 또 말했다. "나라가 강해지는 것은 오로지 법을 집행하는 것 뿐입니다. 형을 실행하지 못하면 법을 어지럽히는 것이니 누가 또 두려움을 알겠습니까? 경정을 죽이지 않느다면 금후로 다시는 용병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혜공이 사마열을 바라보고 속히 형을 집행하라고 했다. 경정은 목을 늘여 형을 받았다.

염선이 시를 지어 혜공이 도량이 좁아 경정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을 탄식했다.   

 

누가 곳간을 닫아 걸고 배띄워 구황곡 보낸 은혜를 배신하라 했던가?

도리어 간사스럽고 아첨하는 신하의 말을 받아들여 충신을 죽였도다.

혜공은 도량이 좁고 성급하여 군주의 품격을 갖추지 못했으니,

다만 영대산에 영원히 가두어 두는 것이 합당했으리라! 

 

 

 

 

梁繇靡當時圍住秦穆公,自謂必獲,卻被慶鄭呼云:「急救主公!」 遂棄之而去。以此深恨慶鄭,必欲誅之。誅鄭之時,天昏地慘,日色無光,諸大夫中多有流涕者。蛾晰請其尸葬之,曰:「吾以報載我之恩也!」 惠公旣歸國,遂使世子圉隨公孫枝入秦爲質。因請屠岸夷之尸,葬以上大夫之禮,命其子嗣爲中大夫。

惠公一日謂郤芮曰:「寡人在秦三月,所憂者惟重耳,恐其乘變求入,今日纔放心也。」 郤芮曰:「重耳在外,終是心腹之疾。必除了此人,方絶後患。」 惠公問:「何人能爲寡人殺重耳者?寡人不吝重賞。」 郤芮曰:「寺人勃鞮,向年伐蒲,曾斬重耳之衣袂,常恐重耳入國,或治其罪。君欲殺重耳,除非此人可用。」 惠公召勃鞮,密告以殺重耳之事。勃鞮對曰:「重耳在翟十二年矣。翟人伐咎如,獲其二女,曰叔隗,季隗,皆有美色。以季隗妻重耳,而以叔隗妻趙衰,各生有子,君臣安於室家之樂,無復虞我之意。臣今往伐,翟人必助重耳興兵拒戰,勝負未卜。願得力士數人,微行至翟,乘其出遊,刺而殺之。」 惠公曰:「此計大妙!」 遂與勃鞮黃金百鎰,使購求力士,自去行事:「限汝三日內,便要起身。事畢之日,當加重用。」 自古道, '若要不知,除非莫爲。若要不聞,除非莫言。' 惠公所託,雖是勃鞮一人,內侍中多有聞其謀者。狐突聞勃鞮揮金如土,購求力士,心懷疑惑,密地裏訪問其故。那狐突是老國舅,那個內侍不相熟?不免把這密謀,來洩漏於狐突之耳。狐突大驚,即時密寫一信,遣人星夜往翟,報與公子重耳知道。

 

 

 

양요미가 당시 섬진의 목공을 포위하여 반드시 사로잡을 것이라고 여겼었는데 경정이 "주군이 위급하다!"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목공을 버려두고 떠났었다. 이로 인하여 경정에게 깊은 원한을 품어 반드시 그를 죽이고자 했다. 

경정을 죽일 때 천지가 어두워지고 해가 빛을 잃었으며 대부들 중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렸다. 

아석이 그의 시신을 청하여 매장하면서 중얼거렸다.

"내가 부상당해 누워 있을 때 나를 싣고 온 은혜를 갚는구나!"

혜공이 귀국하자 세자 어(圉)로 하여금 공손지를 따라 가게 하여 섬진에 인질로 삼았다. 그리고 섬진에 도안이의 시신을 청하여 상대부의 예로 장례를 치르고 그의 아들이 중대부의 지위를 이어받게 하였다. 

 

혜공이 하루는 극예에게 말했다.

"과인이 섬진에 3개월동안 갇혀 있으면서 염려되는 것은 오직 중이였는데 그가 나라의 변고를 틈타 귀국할까 두려워 했었는데 오늘에야 겨우 마음을 놓았소." 

극예가 말했다.

"중이가 외국에 있는 것은 결국 심복지환이 될 것입니다. 반드시 그를 제거하여 후환을 없애야 합니다."

혜공이 말했다.

"누가 나를 위해 중이를 죽여줄 수 있겠소? 과인이 아끼지 않고 후히 상을 내릴 것이오."

극예가 말했다.

"내시 발제(勃鞮) 지난 날 포읍(蒲邑)을 칠 때 중이의 옷소매를 자른 적이 있어 항상 중이가 귀국하여 그의 죄를 다스리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주군께서 중이를 죽이려고 하신다면 이 사람이 아니면 쓸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혜공이 발제를 불러 은밀히 중이를 죽이려고 하는 일을 알렸다. 

발제가 대답했다.

"중이가 적(翟)나라에서 지낸지 12년이 되었습니다.  적인(翟人)이 구여씨(咎如氏)를 정벌하여 그 두 딸을 사로잡았는데 이름을 숙외(叔隗), 계외(季隗)라 하는데 모두 아름답습니다. 적인은 계외를 중이에게 출가시키고 숙외를 조최(趙衰)에게 시집보내 각 아들을 낳았는데 군신이 모두 살아가는 재미에 안주하여 우리를 대비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신이 지금 중이를 치러 간다면 적인들이 반드시 중이를 도와 군대를 일으켜 대항할 것이라 승부를 점칠 수 없습니다. 힘 좋은 장사 몇 사람을 데리고 은밀히 적땅에 도착하여 그가 놀러 나가는 틈을 노린다면 그를 죽일 수 있을 것입니다."

혜공이 말했다.

"그 계책이 참으로 훌륭하도다!"

마침내 발제에게 황금 100일(鎰)을 주어 용사들을 모집하여 스스로 일을 행하게 했다.

"너는 3일이내에 출발하도록 해라. 일을 마치면 너를 중용하리라!"

옛부터 전하는 말이 있다. '알지 못하려면 행하지를 말고, 듣지 않으려면 말하지 말라.'

혜공이 부탁한 것은 비록 발제 한 사람이었다 해도 내시중에 그들의 음모를 알게 된 자가 많았다. 호돌은 발제가 돈을 물쓰듯 하며 장사들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내심 의혹을 품어 은밀히 사방에 사람을 보내 그 까닭을 알아보게 하였다.  호돌은 연로한 국구인데 어찌 내시들 중 친한 자가 없겠는가?  그 음모가 노출되지 않을 수 없어 결국 호돌의 귀에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호돌이 크게 놀라 즉시 서찰을 작성하고 은밀하게 사람을 적(翟)나라로 보내 밤새워 달려가서 공자 중이에게 알리게 했다.

 

 

 

  

卻說重耳是日,正與翟君獵於渭水之濱。忽有一人冒圍而入,求見狐氏兄弟,說:「有老國舅家書在此。」 狐毛狐偃曰:「吾父素不通外信,今有家書,心然國中有事。」 即召其人至前。那人呈上書信,叩了一頭,轉身就走。毛偃心疑。啟函讀之,書中云:「主公謀刺公子,已遣寺人勃鞮,限三日內起身。汝兄弟稟知公子,速往他國,無得久延取禍。」 二狐大驚,將書稟知重耳。重耳曰:「吾妻子皆在此,此吾家矣。欲去將何之?」 狐偃曰:「吾之適此,非以營家,將以圖國也;以力不能適遠,故暫休足於此。今爲日已久,宜徙大國。勃鞮之來,殆天遣之以促公子之行乎?」 重耳曰:「即行,適何國爲可?」 狐偃曰:「齊侯雖耄,伯業尙存,收恤諸侯,錄用賢士。今管仲隰朋新亡,國無賢佐,公子若至齊,齊侯必然加禮。倘晉有變,又可借齊之力,以圖復也。」 重耳以爲然。乃罷獵歸,告其妻季隗曰:「晉君將使人行刺於我,恐遭毒手,將遠適大國,結連秦楚,爲復國之計。子宜盡心撫育二子,待我二十五年不至,方可別嫁他人。」 季隗泣曰:「男子志在四方,非妾敢留。然妾今二十五歲矣,再過二十五年,妾當老死,尙嫁人乎?妾自當待子,子勿慮也!」 趙衰亦囑咐叔隗,不必盡述。次早,重耳命壺叔整頓車乘,守藏小吏頭須收拾金帛。正吩咐間,只見狐毛狐偃倉皇而至,言:「父親老國舅見勃鞮受命次日,即便起身,誠恐公子未行,難以隄防,不及寫書,又遣能行快走之人,星夜趕至,催促公子速速逃避,勿淹時刻!」 重耳聞信,大驚曰:「鞮來何速也?」 不及裝束,遂與二狐徒步出於城外。壺叔見公子已行,止備犢車一乘,追上與公子乘坐。趙衰臼季諸人,陸續趕上,不及乘車,都是步行。重耳問:「頭須如何不來?」 有人說:「頭須席卷藏中所有逃去,不知所向了。」 重耳已失窠巢,又沒盤費,此時情緖,好不愁悶!事已如此,不得不行。正是忙忙似喪家之犬,急急如漏網之魚。公子出城半日,翟君始知,欲贈資裝,已無及矣。

有詩爲證:

流落夷邦十二年,

困龍伏蟄未升天。

何事相煎急?

道路於今又播遷。

 

 

 

한편 중이는 이날 적(翟)나라 군주와 위수(渭水)가로 사냥을 나갔었다. 갑자기 한 사람이 위험을 무릅쓰고 사냥터 안으로 들어와 호씨(狐氏) 형제를 보기를 청하며 말했다.

"노국구의 댁에서 보낸 서찰이 여기 있습니다." 

호모(狐毛)와 호언(狐偃)이 말했다.

"아버지께서는 평소 외부에 서찰을 보내시지 않는데 지금 집에서 서찰을 보내신 것을 보니 반드시 나라안에 무슨 일이 있으리라."

즉시 그 사람을 앞으로 불러오게 했다. 그 사람은 서신을 바치더니 고개를 숙여 절을 하고는 곧바로 몸을 돌려 떠났다. 호모와 호언은 의혹이 일어 바로 봉함을 뜯어 읽었는데 서찰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주공이 공자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이미 내시 발제를 보내기로 하였으며 발제는 3일 안에 떠나게 될 것이다.  너희 형제는 공자에게 알려 속히 다른 나라로 떠나라. 오래 지체하여 화를 당하지 않게 해라"

호씨 형제가 크게 놀라 서찰을 중이에게 전달하여 알리니 중이가 말했다.

"내 처자가 모두 이곳에 있으니 여기가 내 집이다. 간다면 어다로 가야 하는가?"

호언이 말했다.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은 가정을 꾸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장차 나라를 도모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힘이 부족해 멀리 갈 수 없다면 잠시 이곳에서 쉬는 것도 좋습니다. 지금 시일이 너무 오래 지났으니 큰 나라로 옮겨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발제가 오는 것은 아마도 하늘이 공자님이 이곳에서 떠나시기를 재촉하려고 보낸 것이 아니겠습니까?"

중이가 물었다.

"떠난다면 어느 나라로 가는 것이 좋겠소?"

호언이 대답했다.

"제(齊)나라 환공은 나이가 80이지만 패업(伯業)이 여전히 존속하고 있어 제후들을 거두어 돕고 있으며 현명한 선비들을 등용하고 있습니다. 지금 관중과 습붕이 죽어 나라에 보좌할만한 현명한 자가 없으니 공자께서 제나라에 가신다면 제환공은 반드시 예로써 후히 대접할 것입니다. 또 진나라에 변이 생긴다면 제나라의 힘을 빌 수 있으니 당진으로의 복귀를 도모할 수도 있습니다." 

중이도 그렇게 여기고  사냥이 끝나 집으로 돌아가자 부인 계외에게 말했다.

"당진의 군주가 사람을 보내 나를 죽이려고 하는데 그 독수(毒手)를 맞이할까 두렵소.  일단 먼 곳의 큰 나라로 가서 장차 섬진과 초나라와 결연하여 당진으로 복귀할 계책을 세우고자 합니다. 그대는 정성껏 두 아이를 키워주시오. 25년동안 나를 기다렸다가 오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개가하도록 하시오."

계외가 울면서 말했다.

"남자의 뜻이 천하에 있는데 첩이 감히 붙잡을 수 없지요. 그러나 첩이 지금 25살인데 다시 25년이 지나면 첩은 늙어죽게 될 것인데 어찌 개가를 하라고 그러십니까? 첩은 낭군을 기다릴 것이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조최도 숙외에게 부탁하였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다움날 일찍 중이는 호숙(壺叔)에게 명하여 타고 갈 수레를 손보게 하고 재물을 관리하는 두수(頭須)에게 금과 비단을 챙기도록 하였다. 

바로 분부를 하고 있는 사이에 호모와 호언이 황급히 와서 말했다. 

"저희 부친인 노국구께서 발제가 혜공으로부터 명을 받은 다음 날 바로 출발한 것을 아시고, 공자께서 떠나시지 않아 화를 당하실까 두려워 서찰을 쓰시지도 못하고 발걸음이 빠른 자로 하여금 밤새도록 달려와 공자께서 속히 피하시도록 독촉하시며 촌각도 지체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중이가 그 소식을 듣고 크게 놀라며 말했다.

"발제가 어찌 그렇게 빨리 온단 말인가!"

미처 행장을 꾸리지도 못한 채 호씨 형제와 걸어서 도성밖으로 나갔다. 호숙은 공자가 이미 떠난 것을 알고 소달구지 한 대만을 준비하여 공자를 쫒아가 수레에 태웠다. 조최(趙衰)와 구계(臼季)등은 육로로 쫒아 왔으나 수레에 타지는 못하고 모두 걸어갔다.

중이가 물었다.

"두수는 어찌 오지않는가?"

누군가 대답했다.

"두수는 가지고 있던 짐을 모두 챙겨 도망쳤는데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중이는 이미 보금자리를 잃어버렸는데 경비까지 없어졌으니 이 때의 심정이 어찌 답답하지 않았으랴!  사정이 이미 이렇게 되었으나 가던 길을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다급한 모양이 상가집 개 같았고, 급급한 모습이 어망을 벗어난 물고기 같았다.  공자가 성을 나간지 반나절 쯤 지났을 때 적(翟)나라 군주가 비로소 알고 경비를 주려고 하였으나 만나지 못했다. 

 

이 모습을 읊은 시가 있다. 

다른 나라를 유랑한지 12년인데,

곤경에 처한 용이 엎드려 승천을 못하는구나.

콩과 콩깍지가 무슨 일로 서로 볶아댐이 급한가?

지금 길에서 또 난을 피해 떠도네.

 

 

 

 

卻說惠公原限寺人勃鞮三日內起身,往翟幹事,如何次日便行?那勃鞮原是個寺人,專以獻勤取寵爲事。前番獻公差他伐蒲,失了公子重耳,僅割取衣袂而回,料想重耳必然銜恨。今番又奉惠公之差,若能夠殺卻重耳,不惟與惠公立功,兼可除自己之患。故此糾合力士數人,先期疾走,正要公子不知防備,好去結果他性命。誰知老國舅兩番送信,漏洩其情,比及勃鞮到翟,訪問公子消息,公子已不在了。翟君亦爲公子面上,吩咐關津,凡過往之人,加意盤詰,十分嚴緊。勃鞮在晉國,還是個近侍的宦者,今日爲殺重耳而來,做了奸人刺客之流,若被盤詰,如何答應?因此過不得翟國,只得怏怏而回,復命於惠公。惠公沒法,只得暫時擱起。

 

夠 : 모을 구. 모으다. 모이다. 많다. 족하다. 흡족하다.               擱 : 놓을 각. 놓다. 잡고 있던 것을 놓음. 멈추다좌초(坐礁).

 

 

 

한편 혜공은 원래 환관 발제에게 3일이내에 출발하여 적(翟)나라로 가서 일을 실행하도록 했었는데 어찌

다음날 바로 출발했었던가? 발제는 원래 일개 환관이라 오로지 부지런함으로 총애를 받는 것이 일이었다. 지난번 헌공이 그를 보내 중이가 있던 포읍(蒲邑)을 치게 했을 때 공자 중이를 놓치고 가까스로 소매자락만 잘라 취하고 돌아갔기 때문에 중이가 반드시 자신에게 한을 품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번에는 또 혜공의 명을 받들었으니 중이를 족히 죽일 수 있다면 혜공에게 공을 세울 뿐 아니라 자신의 근심을 없앨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렇게 장사 몇명을 규합하여 기일에 앞서 달려가 공자 중이가 방비할 틈도 주지 않고 중이의 목숨을 빼앗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누가 알았겠는가? 노국구 호돌이 두 번이나 아들들에게 서신을 보내 그 계획을 누설하였기 때문에 발제가 적나라에 도착하여 공자의 소식을 탐문하였을 때 공자는 이미 적나라를 떠난 후였다. 적나라 군주도 공자의 모습을 그려 관문과 나루를 지키는 병사들에게 분부를 내리고 모든 통행자들을 빈틈없이 검색하게 하고 있었다. 발제가 당진에서는 군주를 가까이에서 모시는 환관이었으나 지금은 중이를 죽이기 위해 입국한 간악한 자객의 신분이라 만약 검문이라도 당한다면 어찌 응대할 것인가? 따라서 적나라에서 머물며 찾아보지도 못하고 앙앙히 돌아와 혜공에게 복명했다.  혜공도 방법이 없어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再說公子重耳一心要往齊邦,卻先要經繇衛國,這是 『登高必自卑,行遠必自邇』。重耳離了翟境,一路窮苦之狀,自不必說。數日,至於衛界,關吏叩其來歷。趙衰曰:「吾主乃晉公子重耳,避難在外,今欲往齊,假道於上國耳。」吏開關延入,飛報衛侯。上卿寧速,請迎之入城。衛文公曰:「寡人立國楚丘,並不曾借晉人半臂之力。衛晉雖爲同姓,未通盟好。況出亡之人,何關輕重?若迎之,必當設宴贈賄,費多少事,不如逐之。」 乃吩咐守門閽者,不許放晉公子入城。重耳乃從城外而行。魏犨顚頡進曰:「衛燬無禮,公子宜臨城責之。」 趙衰曰:「蛟龍失勢,比於蚯蚓。公子且宜含忍,無徒責禮於他人也。」 犨頡曰:「旣彼不盡主人之禮,剽掠村落,以助朝夕,彼亦難怪我矣。」 重耳曰:「剽掠者謂之盜。吾寧忍餓,豈可行盜賊之事乎?」 是日,公子君臣,尙未早餐,忍飢而行。看看過午,到一處地名五鹿,見一夥田夫,同飯於隴上。重耳令狐偃問之求食。田夫問:「客從何來?」 偃曰:「吾乃晉客,車上者乃吾主也。遠行無糧,願求一餐!」田夫笑曰:「堂堂男子,不能自資,而問吾求食耶?吾等乃村農,飽食方能荷鋤,焉有餘食及於他人?」 偃曰:「縱不得食,乞賜一食器!」田夫乃戲以土塊與之曰:「此土可為器也!」魏犨大罵:「村夫焉敢辱吾!」 奪其食器,擲而碎之。重耳亦大怒,將加鞭扑。偃急止之曰:「得飯易,得土難,土地,國之基也。天假手野人,以土地授公子,此乃得國之兆,又何怒焉?公子可降拜受之。」 重耳果依其言,下車拜受。田夫不解其意,乃群聚而笑曰:「此誠癡人耳!」

後人有詩曰:

土地應爲國本基,

皇天假手慰艱危。

高明子犯窺先兆,

田野愚民反笑癡。

 

☞ 登高必自卑 ~ : 中庸 第15章에 나오는 문구.   君子之道, 辟如行遠必自邇, 辟如登高必自卑。            蚯 : 지렁이 구.

扑 : 칠 복(박). ㅊ,다. 때리다. 두드리다. 엎어지다. 넘어지다. 가득하다. 소유하다. 가지다. 닦다. 회초리. 몽둥이. 다. 모두.

 

 

 

한편 공자 중이 일행은 한 마음으로 제(齊)나라로 가는 도중, 먼저 위(衛)나라를 경유하게 되었는데, 이에 대하여는 옛말이 있다. 

'높은 곳에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곳부터 시작하고, 먼 길을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곳부터 시작해야 한다.' 

중이가 적나라 국경을 벗어나 길을 가는 도중의 어려운 상황은 말할 수 없이 참혹했다.  며칠이 지나자 위(衛)나라 국경에 도착했는데 관문을 지키는 관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물었다. 

조최가 대답했다.

"우리 주군은 당진의 공자 중이이며 난을 피하여 외국에 나와있는 중인데 지금 제(齊)나라로 가려던 중에 상국의 길을 잠시 빌리게 된 것입니다."

관리가 문을 열어 성안으로 들이고는 나는 듯이 위나라 군주에게 보고했다. 

상경(上卿) 영속(寧速)이 중이를 맞아들여 도성에 들어오게 하자고 청했는데 위문공(衛文公)이 말했다.  

"과인이 초구(楚丘)에 나라를 다시 세웠는데 당진에서는 나를 도운 적이 없소.  위나라와 당진은 동성(同姓)이라도 서로 통하거나 우호조약을 체결한 바도 없소.  하물며 망명자인데 무슨 관련이 있겠소?  만약 그를 받아들이게 되면 반드시 연회를 열고 재물도 주어야 할 것이라 비용도 많이 들게 될 것이니 그를 쫒아버리는 것이 낫겠소."

그리하여 관문을 지키는 관리에게 분부하여 당진 공자 일행의 입성을 허락하지 않았다. 중이는 성 밖에서 떠나야만 했다.

위주(魏犨)와 전힐(顚頡)이 진언했다.

"위문공(衛文公) 훼(燬)가 무례합니다. 공자께서는 마땅히 성으로 가셔서 꾸짖으셔야 합니다."

그러자 조최가 말했다.

"교룡이 때를 얻지 못하면 지렁이와 같은 취급을 받습니다. 공자께서는 잠깐 참으시는 것이 마땅합니다. 한갓 남의 무례를 탓할 것 없습니다."

위주와 전힐이 말했다.

"이미 그가 주인으로서의 예를 다하지 않았으니 촌락을 털어 아침 저녁 식사를 해결해도 그가 우리를 탓하지 못할 것입니다."

중이가 대답했다.

"약탈하는 자를 도적이라고 한다. 내가 굶주림을 참을지언정 어찌 도적이 하는 일을 행할 수 있겠는가?"

이날 공자의 군신은 아침식사도 아직 못한 채 굶주림을 참으며 가고 있었다. 가다보니 한낮이 되어 오록(五鹿)이라고 하는 곳에 도착했는데 한 떼의 농부들이 밭두둑 위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중이가 호언에게 먹을 것을 구해 오게 했다. 

농부가 물었다.

"어디에서 오시는 분들입니까?" 

호언이 대답했다.

"우리는 당진 사람으로 수레 위에 계신 분이 우리 주군이십니다. 먼 길을 가는데 식량이 떨어졌습니다. 먹을 것 좀 부탁합니다."

농부가 웃으면서 말했다.

"당당한 남자들이 스스로 먹을 것을 해결하지 못하고 우리같은 시골 농부들에게 먹을 것을 구한단 말이오? 우리는 농부들이라 배불리 먹어야 김을 맬 수 있소. 어찌 밥을 남겨 남에게 주겠소?"

호언이 말했다.

"밥을 먹을 수 없다면 밥 한 그릇이라도 주시기 바랍니다."

농부가 희롱조로 호언에게 흙덩어리 하나를 주며 말했다.

"이 흙이 한 그릇은 될 것이오."

이주가 큰 소리로 꾸짖었다.

"촌놈들이 어찌 감히 우리를 모욕할 수 있단 말인가!"

그 밥그릇을 빼앗아 던져 깨뜨려버렸다. 중이도 크게 노하여 채찍으로 치려고 하였다. 

그러자 호언이 급히 제지하며 말했다.

"밥을 얻는 것은 쉽지만 흙을 얻는 것은 어렵습니다. 토지는 나라의 기틀입니다. 하늘이 농부의 손을 빌어 공자께 토지를 주시는 것이라 이야말로 나라를 얻을 징조인데 어찌 노하십니까? 공자께서는 절하고 받는 것이 좋습니다."

중이가 결국 그 말을 좇아 수레에서 내려 절하고 받았다. 농부들이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모여들더니 웃으며 말했다. 

"이 사람들이야 말로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이로구나!"

 

후인이 시를 지었다.

토지는 응당 나라의 근본이며 기틀이 되는 것이니,

하늘이 농부의 손을 빌어 간난과 위태로움을 위로했도다.

식견 높은  구범(舅犯 = 狐偃)은 미리 징조를 엿보았는데,

들판의 어리석은 백성은 오히려 어리석은 자라고 비웃는구나!

 

 

 

 

再行約十餘里,從者飢不能行,乃休於樹下。重耳飢困,枕狐毛之膝而臥。狐毛曰:「子餘尙攜有壺餐,其行在後,可俟之。」 魏犨曰:「雖有壺餐,不夠子餘一人之食,料無存矣。」 眾人爭採蕨薇煮食,重耳不能下咽。忽見介子推捧肉湯一盂以進,重耳食之而美。食畢,問:「此處何從得肉?」 介子推曰:「臣之股肉也。臣聞『孝子殺身以事其親,忠臣殺身以事其君。』今公子乏食,臣故割股以飽公子之腹。」重耳垂淚曰:「亡人累子甚矣!將何以報?」子推曰:「但願公子早歸晉國,以成臣等股肱之義。臣豈望報哉!」

髯仙有詩贊云:

孝子重歸全,虧體謂親辱。

嗟嗟介子推,割股充君腹。

委質稱股肱,腹心同禍福。

豈不念親遺?忠孝難兼局!

彼哉私身家,何以食君祿?

 

 

 

다시 약 10여 리를 갔는데 종자들은 배가 고파 걸을 수가 없어 나무 밑에서 쉬었다. 중이는 배도 고프고 지쳐 호모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호모가 말했다.

"자여(子餘 : 趙衰)가 마실 것과 먹을 것을 가지고 뒤에서 오고 있으니 잠깐 기다리십시오."

위주가 말했다.

"자여 한 사람이 먹기에도 부족할 것인데 남은 것이 있겠소."

일행이 다투어 고사리를 뜯어다가 삶아 먹었는데 중이는 목구멍에 넘기지 못했다. 홀연히 개자추가 고깃국 한 사발을 받들고 나타나 중이에게 바쳤다. 중이가 받아 맛있게 먹었다. 

중이가 모두 먹고 나서 개자추에게 물었다.

"여기 어디에서 고기를 얻을 수 있었는가?"

개자추가 대답했다.

"신의 허벅지 살입니다. 신이 듣기로 '효자는 몸을 바쳐 부모를 섬기고 충신은 몸을 바쳐 군주를 섬긴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공자께서 드시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신이 허벅지 살을 베어 그 요리를 공자께서 드시게 한 것입니다." 

중이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망명객이 되어 그대에게 누를 끼치는 것이 심하구나! 장차 무엇으로 갚아야 하는가?"

개자추가 대답했다.

"단지 공자께서 빨리 당진에 귀국하시어 신들의 고굉의 뜻을 이루어 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신이 어찌 보답을 바라겠습니까?"

 

염선이 시를 지어 개자추를 칭찬했다.

 

효자는 몸을 온전하게 하는 것을 중히 여기고, 몸을 상하면 부모를 욕보이는 것이라 여겼다.

아아, 개자추여! 허벅지 살을 베어 주군의 주린 배를 채웠구나.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신하를 고굉지신이라 하니, 마음으로 환난과 복을 함께 하도다.

어찌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몸을 생각하지 않으리오, 충과 효는 함께 이루기 어려운 것!

자신의 몸을 아끼는 자들이여! 무엇때문에 군주의 녹을 먹는가?

 

 

 

 

良久,趙衰始至。眾人問其行遲之故,衰曰:「被棘刺損足脛,故不能前。」 乃出竹笥中中壺餐,以獻於重耳。重耳曰:「子餘不苦飢耶?何不自食?」 衰對曰:「臣雖飢,豈敢背君而自食耶?」 狐毛戲魏犨曰:「此漿若落子手,在腹中且化矣。」 魏犨慚而退。重耳即以壺漿賜趙衰,衰汲水調之,遍食從者。重耳嘆服。重耳君臣一路覓食,半飢半飽,至於齊國。齊桓公素聞重耳賢名,一知公子進關,即遣使往郊,迎入公館,設宴款待。席間問:「公子帶有內眷否?」重耳對曰:「亡人一身不能自衛,安能攜家乎?」桓公曰:「寡人獨處一宵,如度一年。公子絀在行旅,而無人以侍巾櫛,寡人為公子憂之!」於是擇宗女中之美者,納於重耳。贈馬二十乘,自是從行之眾,皆有車馬。桓公又使廩人致粟,庖人致肉,日以為常。重耳大悅,嘆曰:「向聞齊侯好賢禮士,今始信之!其成伯,不亦宜乎?」其時周襄王之八年,乃齊桓公之四十二年也。

 

笥 : 상자 사.                   絀 : 꿰맬 출. 꿰매다. 솔기. 물리치다. 허리를 굽히다겸양(謙讓). 부족하다.

 

 

 

한참이 지난 후 조최가 비로소 도착했다.  사람들이 그에게 늦게 된 까닭을 묻자 조최가 대답했다. 

"발에 가시가 찔려 다쳤기 때문에 걸을 수가 없었소."

그리고 대나무 상자 안에서 마실 것과 음식을 꺼내 중이에게 바쳤다. 

중이가 물었다.

"자여도 굶주려 고통스럽지 않았소? 어찌 먹지 않았소?"

조최가 대답했다. "신이 배가 고파도 어찌 감히 주군을 놔두고 먹을 수 있겠습니까?"

호모가 위주를 놀리며 말했다. "이 마실 것이 그대 손에 들아갔더라면 뱃속에서 이미 소화되었을 것이오."

위주가 부끄러워 물러갔다. 중이가 즉각 마실 것을 조최에게 주었더니 조최는 고르게 물을 따라 종자들에게 먹였다. 중이가 그 모습을 보며 탄복했다. 중이의 군신은 가는 도중 먹을 것을 찾아 굶주리기도 하고 배불리 먹기도 하면서 마침내 제(齊)나라에 도착했다.

 

제환공은 평소 중이가 현명하다는 명성을 듣고 있던 터라 공자가 관문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고 즉시 교외로 사자를 보내 공관에 맞아 들이고 주연을 베풀어 정성껏 대접했다.

제환공이 술자리에서 물었다.

"공자는 부인을 대동하지 않았습니까?"

중이가 대답했다.

"망명객이 한 몸도 지키지 못하는데 어찌 가족을 데리고 다닐 수 있겠습니까?"

환공이 말했다.

"과인은 혼자서 하룻 밤을 지내도 1년이 지나는 것 같습니다.  공자는 망명하여 떠도는 동안 시중 들 사람이 없어 불편하였을 것이니 과인이 공자를 위해 힘써 보겠소."

이리하여 종중의 딸중 아름다운 여인을 간택하여 중이를 시중들게 하였다.  또 말 20마리를 주니 이로부터 중이를 따르던 자들이 모두 거마를 소유하게 되었다. 환공은 또 창고지기에게 명하여 양식을 보내게 하고 요리사에게 고기를 보내게 하여 매일 변함없이 공급했다.

중이가 크게 기뻐하며 탄식했다.

"예전에 제환공이 어진 사람을 좋아하고 선비를 예로써 대한다고 들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믿겠도다. 그가 패업(伯業)을 이룬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때가 주양왕 8년이며 제환공 42년이었다.

 

 

  

桓公自從前歲委政鮑叔牙,一依管仲遺言,將豎刁、雍巫、開方三人逐去。食不甘味,夜不酣寢,口無謔語,面無笑容。長衛姬進曰:「君逐豎刁諸人,而國不加治。容顔日悴,意者左右使令,不能體君之心。何不召之?」 桓公曰:「寡人亦思念此三人,但已逐之,而又召之,恐拂鮑叔牙之意也。」 長衛姬曰:「鮑叔牙左右,豈無給使令者?君老矣,奈何自苦如此!君但以調味,先召易牙,則開方豎刁可不煩招而致也。」 桓公從其言,乃召雍巫和五味。鮑叔牙諫曰:「君豈忘仲父遺言乎?奈何召之?」 桓公曰:「此三人有益於寡人,而無害於國。仲父之言,無乃太過!」 遂不聽叔牙之言,並召開方豎刁。三人同時皆令復職,給事左右。鮑叔牙憤鬱發病而死,齊事從此大壞矣。

 

 

 

제환공은 종전 포숙아에게 정사를 맡긴 해부터 관중의 유언에 따라 수조(豎刁)、옹무(雍巫 = 易牙)、개방(開方)의 세 사람을 쫒아냈었다.

그 이후 음식을 먹어도  맛을 느끼지 못하고, 밤에 잠을 깊이 자지 못하며 입에서 농담이 나오지 못하고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큰 위희(衛姬)가 진언했다.

"주군께서는 수조등을 쫒아내신 후 나라를 다스리시지 않고 계십니다. 용안이 나날이 수척해지시는데 뜻한 바를 시자들에게 영을 내려도 주군의 마음을 받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찌 그들을 부르지 않으십니까?"

환공이 대답했다.

"과인도 그 세 사람을 생각하고 있지만 이미 그들을 쫒아냈는데 또 그들을 불러들인다면 포숙아의 뜻을 거스를까 두렵소."

큰 위희가 말했다.

"포숙아는 좌우에 어찌 영을 받드는 자가 없겠습니까? 주군께서 연로하신데 어찌 이렇게 고통을 겪고 계십니까? 주군께서는 일단 입맛을 찾으셔야 하니 먼저 역아를 부르십시오. 그렇게 하신다면 개방과 수초도 불러들이는 것도 번거롭지 않을 것입니다."

환공이 그 말을 좇아 옹무를 부르자 입맛을 되찾게 되었다. 

그러자 포숙아가 간했다.

"주군께서는 어찌 중부의 유언을 어기십니까? 어찌 그를 부르셨습니까?"

환공이 대답했다.

"이 세 사람은 과인에게 유익한 사람이며 나라에도 해가 되지 않소. 중부의 말은 너무 과한 것이 아니오!"

마침내 포숙아의 간언을 듣지 않고 아울러 개방과 수조도 불러들였다. 세사람이 동시에 영을 받아 복직했다. 

포숙아는 분노로 울화병이 생겨 죽고 말았으며 제나라의 국사는 이로부터 크게 붕괴되었다.

 

 

 

後來畢竟如何,且看下回分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