八月二十日 題楞迦山 元曉房 幷序
李奎報(1168-1241)
邊山一名楞迦, 昔元曉所居方丈, 至今猶存。有一老比丘, 獨居修眞, 無侍者, 無鼎鐺炊爨之具, 日於蘇來寺趁一齋而已。
변산의 다른 이름은 능가산이다. 옛날 원효가 살던 절이었는데 지금도 아직 남아 있다. 어떤 늙은 비구 하나가 홀로 살면서 도를 닦고 있다. 시종도 없고 솥이나 차를 달이는 도구도 없다. 매일 소래사에 가서 한 끼 밥을 먹을 뿐이다.
楞 : 모 릉. 모(稜). 모서리. 불교에서는 棱자를 쓰지 않고 특히 이 자만 씀. 爨 : 부뚜막 찬. 부뚜막. 불을 때다. 조리하다.
☞ 蘇來寺
백제 무왕 34년(633) 혜구(惠丘)가 창건하여 ‘소래사(蘇來寺)’라고 하였다. 1633년(인조 11)에 청민(靑旻)이 대웅보전을 지어 중건하였고, 1604년(인조 18) 청영(淸映)이 설선당과 요사를 지었다. 1902년 관해(觀海)가 수축한 뒤 1983년 일주문을 세우고 1985년 대웅보전을 중수하였으며, 1986년 천왕문을 짓고 설선당과 요사를 보수하였다. 소래사가 내소사로 바뀐 것은 중국의 소정방(蘇定方)이 석포리에 상륙한 뒤, 이 절을 찾아와서 군중재(軍中財)를 시주하였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고쳐 불렀다고 전하나 사료적인 근거는 없다.
循山度危梯、疊足行線路。 산 돌아 아슬아슬한 사다리 건너, 한 걸음 한 걸음 좁은 길 따라 나아가니,
上有百仞巓、曉聖曾結宇。 위로 백길 산마루가 나오는데 일찍이 원효성사가 집을 얽어 살던 곳이다.
靈蹤杳何處、遺影留鵝素。 신령한 자취는 어디에 있는지 아득하고, 그림자만 비단에 남아있다.
茶泉貯寒玉、酌飮味如乳。 찻물 긷는 우물에 차거운 옥수(玉水) 고여 있어, 마셔보니 우유같은 맛이로다.
此地舊無水、釋子難栖住。 이곳에 예전에는 물이 없어 불자가 지내기 어려웠으나,
曉公一來寄、甘液湧嚴竇。 원효대사가 한번 머문 뒤에는 감미로운 물이 바위틈에서 솟구쳤다 하네.
吾師繼高蹲、短葛此來寓。 우리 스님께서는 높은 자취를 이어받아, 갈포를 걸치고 여기에서 머무셨도다.
環顧八尺房、唯有一雙履。 팔척 방을 둘러보니 한 켤레 신발 뿐이네.
亦無侍居者、獨坐度朝暮。 또 시종하는 자도 없이 홀로 앉아 하루를 보내셨구나.
小性復生世、敢不拜僂傴。 소성거사가 다시 세상에 나신다면 감히 몸 굽혀 절하지 않으랴.
[曉師俗號小性居士] [원효성사의 속세에서 부르는 호칭이 소성거사이다.]
鵝素 : 아계소(鵝溪素) 혹은 아계견(鵝溪絹)이라고도 한다. 비단의 일종. 사천성(四川省) 염정현(鹽亭縣)에서 생산된 비단으로, 당나라 시대의 귀한 공물이였고, 송대의 서화에 귀중히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