鴟夷子歌
漢家龍飛泗水闊、 한 고조가 용비하자 사수가 넓었고
秦宮三月紅焰烈。 진나라 아방궁이 석 달동안이나 붉게 화염에 휩싸였도다.
當時運籌身被瘡、 당시의 모사들과 장수들,
諸公一旦高閥閱。 공 있는 자들 하루 아침에 명문거족이 되었도다.
礪山帶河字未乾、 여산대하의 글자가 채 마르지도 않았는데,
韓彭菹醢冤誰雪? 한신과 팽월이 주륙되었으니 그 원한 누가 설욕해줄까?
當時子房美婦人、 당시 장자방(張良)은 여인처럼 아름다웠는데,
素書一篇三寸舌。 소서(素書) 한 권, 세 치 혀로,
封留便與赤松游、 유후에 봉해지자 적송자 따라 노닐고자 했는데,
羽翼儲皇眞一瞥。 눈 깜짝할 사이에 태자를 도왔도다.
乃知鴟夷子用心與人別、 이제야 알겠도다, 치이자피의 마음 쓴 것이 남들과 달랐음을,
成功不退多禍機。 공을 이루었어도 물러나지 않으면 재앙을 당할 계기가 많도다.
先獲黃石公祕訣、 황석공의 비결은 그가 먼저 얻었던 것,
五湖煙月天無邊、 오호의 안개에 달이 가려지고, 하늘은 끝없는데
千古遺風吹不絶。 천고에 끼친 바람은 끊이지 않고 부는구나.
<東文選 第8卷>
鴟夷子 : 월상국(越相國) 범여(范蠡)가 문종과 함께 왕 구천(句踐)을 도와 오(吳)나라를 멸한 뒤에 월왕 구천의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고
벼슬을 물러나며 문종에게 월왕 구천은 장경조훼형으로 고난은 함께 할 수 있어도 영화를 함께 누릴 수 없는 상(相)임을 지적
하고 '새가 없어지면 좋은 활이 치워지고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가 삶아진다.'는 말로 은퇴를 권유하고 제(齊)나라 가서 성명을
고쳐 치이자피(鴟夷子皮)라 했다. 그후 제나라 평공(平公)이 재상으로 삼으려고 하자 조나라 정도(定陶)로 가서 살았다.
泗水 : 한고조 유방은 장년이 되자 시험으로 관리에 등용되어 사수정(泗水亭)의 정장(亭長)이 되었다. <史記 卷八. 高祖本記 Ⅰ>
秦宮三月紅焰烈 : 居數日, 項羽引兵西屠咸陽, 殺秦降王子嬰, 燒秦宮室, 火三月不滅. <史記 項羽本記>
運籌 : 주판을 놓듯이 이리저리 궁리하고 계획함. 즉, 모사(謀士). 身被瘡 : 몸에 상처가 난 사람. 즉 장수(將帥)
閥閱 : 나라에 공로가 많고 벼슬 경력이 많음, 또는 그런 집안.
礪山帶河 : "태산이 닳아 숫돌만큼 작아지고, 황하가 말라 허리띠만큼 작아질 때까지 나라를 영원무궁하게 번영하게 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주자."는 공신(功臣)을 봉(封)해 주는 맹세의 말.
韓彭 : 韓信과 彭越. 모두 漢高祖 劉邦의 공신들이었으나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素書 : 신인(神人) 황석공(黃石公)이 지어 장량(長良)에게 주었다는 비결(祕決). 史記에는 태공병법(太公兵法)이라 하였다.
三寸舌 : 장량은 유후가 된 후 늘 공언했다. ".....세치의 혀로 황제의 군사가 되어 ....매우 만족스럽다. .... 적송자를 따라 노닐고자 한다."
羽翼儲皇眞一瞥 : 한고조가 여후(呂后)의 아들인 태자를 척부인(戚夫人)의 아들 여의(如意)로 바꾸고자 하자 여후가 사람을 통해 장량
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힘이 미치지 못함을 들어 성산사호(商山四皓)를 추천, 여후가 그들을 초빙하게 되었다.
연회가 있을 때 태자 뒤를 상산사호가 따르는 모습을 보고 한고조는 태자를 교체할 생각을 접었다. <史記 卷55. 留侯世家>
黃石公祕訣 : 장량이 황석공(黃石公)에게서 받은 비결(祕訣)에, “성공하고 나면 물러가야 한다.”는 말이 있다고 함.
五湖 : 법려가 월왕 구천을 도와 오나라를 멸망시킨 후 벼슬에서 물러나 일엽편주를 타고 오호(五湖)로 나가 성명을 바꾸고 은거했다.